![[군침스틸러] “초능력자도 못 참지”…바삭한 소리에 깨어난 ‘청춘의 낭만’](https://www.nongmin.com/-/raw/srv-nongmin/data2/content/image/2026/07/22/.cache/128/20260722500634.jpg)
“김두식씨 하늘을 날아요?”
“예. 배달입니다. 날으는 돈가스.”
드라마 ‘무빙’(2023년, 박인제·박윤서 감독) 속 하늘을 나는 초능력자 김두식(조인성 분)은 야근을 하던 이미현(한효주 분)이 있는 5층 건물 창문으로 날아가 돈가스를 배달한다. 둘은 첫 데이트에서 돈가스를 먹었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두 사람은 수줍게 눈을 맞추며 바삭하게 튀겨진 돈가스를 썰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미현이 넌지시 묻는다. “돈가스 좋아하시나 봐요?” 두식이 소스가 듬뿍 묻은 고기를 우물거리며 웃는다. “이 집 소스에 무슨 비법이 있는지 엄청 맛있거든요.” 남들보다 오감이 수천배는 예민한 초능력자 미현이 소스를 혀끝으로 음미한다. “버터에 케첩, 설탕, 간장, 후추, 식초, 양파…사과가 들어가네.”
서툰 대화와 설렘이 교차하던 그날, 두 사람은 돈가스 한 접시를 사이에 두고 조금씩 가까워졌다. 이날 “짜장면 말고 돈가스도 배달이 되면 좋겠다”는 미현의 말을 듣고, 두식은 그 이후로 밤하늘을 날아 늦게까지 일하는 미현에게 몰래 돈가스를 배달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사실 이들의 만남은 미현이 두식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면서 시작했다. 1980년대 각종 비밀 작전에 초능력자를 활용했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독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던 두식을 의심했고, 같은 요원인 미현에게 그의 동향을 살피도록 했다.
미현은 우연을 가장해 두식에게 다가간다. 노련한 두식은 그녀의 의도를 처음부터 눈치챘지만 “얼굴 보고 반했다”며 모르는 척 미현을 받아주고, 두 사람은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상부의 도청으로 모든 사실이 발각되고 그녀는 안기부에서 해고된다.
안기부를 떠나 홀로 남겨진 미현이 차린 것은 돈가스집이었다. 두식은 임무에 실패하면서 종적을 감췄고, 미현은 언젠가 두식이 자신을 찾아낼 수 있도록 가게 옥상을 온통 보라색으로 칠해 둔다. 이들이 수줍게 주고받았던 대화 속에서 “보라색을 좋아한다. 우리 집 커튼도 죄다 보라색”이라던 미현의 말을 두식이 잊지 않기를 바라면서.
고도성장기였던 1980∼1990년대 돈가스는 특별한 날에나 즐길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다. 두툼한 상여금 봉투를 받은 아버지가 오랜만에 식구를 데리고 외식할 때면 돈가스를 주문해 ‘우아한 서양문화’를 향유했다. 수저가 아닌 포크와 나이프로 돈가스를 썰어 먹고, 식전 수프와 샐러드를 곁들이는 경양식은 당시만 해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 시절 청춘의 낭만이 멈춰선 곳, 경기 동두천시 보산동의 ‘오륙하우스’를 찾았다. 1969년 문을 연 이곳은 동네에 주둔했던 미 7사단과 미 2사단 부대의 요리사 출신이 문을 연 식당이다. 지금은 그 요리사의 아들 오충호 대표(70)가 반세기 넘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고풍스러운 의자와 식탁, 은은하게 비추는 노란색 전등, 벽에 걸린 명화가 식당을 찾은 이방인의 시계를 과거로 되돌려 놓는다.
처음에 이곳은 미군 입맛에 맞춰 샌드위치와 햄버거, 스테이크를 팔았지만 197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오 대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경양식 열풍과 함께 돈가스·비프가스·치킨가스를 선보였고, 수프와 마늘 바게트, 샐러드, 스파게티를 곁들여 한상을 꾸렸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옛 경양식의 차림 그대로 손님을 맞는다. 처음으로 먹어봐야 하는 것은 양송이수프. 충남 부여산 양송이를 곱게 갈아 걸쭉한 수프는 버섯향이 진하게 퍼졌다. 여기에다 뭉치지 않게 오래 저은 루(버터와 밀가루를 볶은 것)와 우유로 고소함을 더했다.
오 대표는 “손님들이 돈가스를 먹으러왔다가 양송이수프에 반해 ‘걸작’이라며 더 달라고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오리엔탈드레싱을 곁들인 신선한 샐러드와 익숙한 형태의 토마토 스파게티도 식탁을 다채롭게 꾸민다. 이어 손바닥만 한 돈가스 두덩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장한 터라 재빨리 포크와 나이프로 쓱쓱 썰었다. 소스를 듬뿍 머금은 튀김옷은 바삭함을 유지하면서도 눅진하고 폭신한 느낌을 줬다. 얇게 두드린 고기는 질기지 않고 촉촉해 혀에 착착 감겼다.
이 식당의 비결은 주인장의 노련함과 건강한 재료에 있다. 오 대표는 밑간한 국내산 돼지 등심에 밀가루와 달걀물, 빵가루를 차례로 입혀 165∼170℃의 기름에서 노릇한 황금빛이 돌 때까지 튀겨낸다. 돼지 뼈 육수에 각종 채소와 사과·바나나, 오렌지 껍질을 섞어 만든 소스를 돈가스에 넉넉히 끼얹는다. 새콤달콤한 과일의 풍미와 깊은 감칠맛이 어우러진 옛날식 소스는 요즘 유행하는 진한 데미그라스 소스와는 달리 묽게 흘러내려 돈가스를 부드럽게 감싸준다.
오늘날 돈가스는 마트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기성품이 됐다. 하지만 한때는 마음먹어야 실천할 수 있었던 외식의 대상이었고, 가장 아끼는 사람과 마주 앉는 날의 식사였다. 포크와 나이프로 조심스레 돈가스를 썰던 그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각별했을 것이다.
냉동돈가스가 판을 치는 요즘, 왜 사람들은 아직도 오래된 경양식집에 발걸음할까. 노스텔지어! 비오는 날을 그린 수채화처럼 희미해져 버린 그 추억 속 소중한 사람, 아련한 분위기, 따뜻한 감정을 찾아 떠나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동두천=장다해 기자
기사, 번역, 출처 또는 데이터에 문제가 있나요?
수정 요청 제출이 기사의 주제와 관련된 작물·수입·가격 정보는 추후 제공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