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하동은 보성·제주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에 꼽는 차 재배지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줄지어 잘 정돈된 광활한 다원을 생각하고 하동을 찾는다면 당황할 수도 있다. 산비탈을 따라 바위틈 곳곳에까지, 성글게 심긴 데다 깔끔하지 않은 인상마저 주는 작은 차밭들이 하동 다원의 주류다.
그런데 이 이상한 차밭이 가장 선두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하동 전통차 농업은 2015년 차농업 중 최초로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지정된 데 이어 2017년엔 국내 유일의 전통차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도 등재됐다. 같은 세계중요농업유산인 중국 푸저우·푸얼 전통차 농업에 각각 자스민·커피 농사가 접목되기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차농업의 순수성 역시 온전히 보전되고 있다.
무엇이 하동차를 가치 있게 만드는 걸까. 우선, 하동차는 확실한 정통성을 갖고 있다. 한반도 차 유래설은 크게 세 가지다. 서기 828년 신라 흥덕왕 때 중국에서 들여와 지리산에 심었다는 북방유래설(〈삼국사기〉), 서기 48년 가락국 수로왕비가 인도에서 가져와 하동에 심었다는 남방유래설(〈조선불교 통사〉), 그리고 유난히 잎이 작은 지리산 재래종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자생설이다. 어떤 설을 차용하더라도 하동은 한반도 차 농업의 근원지로서 위상을 갖는다.
여기에, 하동에서도 다원의 90%가 모여 있는 화개면(지리산 계곡 지형)은 차농사에 최적의 기후환경을 갖췄다. “산이 계곡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 있고 섬진강 안개 덕에 습도도 일정해요. 냇가를 끼고 있는 데다 강수량도 충분하죠. 일교차요? 찻잎 따는 4월 말~5월 초가 되면 하루에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어요. 아침에 패딩 입고 작업하다 11시에 벗고 2시 이후엔 땀이 나니까요.” 김정곤 하동차생산자협의회장의 설명이다.
생산 방식 또한 전통 그대로다. 산비탈에 성글게 심긴 이 지역 차는 애당초 기계수확이 불가한데, 지형적으로 작업 난이도가 높을뿐더러 잎이 작은 토착 재래종인 까닭에 훨씬 더 많은 손이 간다. 전지와 풀베기 역시 모두 수작업이며, 베어낸 가지와 풀은 그대로 땅에 방치해 2~3년 뒤 자연적으로 거름이 되게 한다.
특히, 한 해에 세 차례 정도 수확하는 일반적인 차농업과 달리 하동 전통차는 ‘연 1회 수확’을 원칙으로 한다. 재배 여건상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만큼 가장 향이 좋은 5월 찻잎만을 사용해 고급차를 만들려는 전략이다. 수확한 찻잎 역시 전통 무쇠솥 덖음 방식의 가공이 일반화돼 있다.
다른 지역에도 고급차 생산 방식은 존재하고 하동에도 광작화된 말차·티백 생산은 존재한다. 다만 대다수가 광작화된 타지역과 달리 하동은 전체 다원의 절반 정도가 전통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하동차는 ‘하동다움’이 경쟁력”이라는 인식에서다.
화개면 주민들의 삶은 오랫동안 이런 전통차 농업과 포개져 왔다. 마치 집집마다 밤나무를 심고 목화를 재배하고 송아지를 키우듯, 이곳 주민들은 조그마한 차밭을 일구며 가계를 뒷받침하고 있다. 평지가 적고 산비탈이 많은 이 지역에서 전통차 농업은 작은 면적으로 높은 효율을 안겨 주는 중요한 소득원이다.
물론 규모가 큰 다원일수록 절감하는 농촌 인력난, 그리고 소농들의 차를 수매하는 농협의 반복적 적자 등 하동 전통차 농업의 현실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하지만 전통과 가치를 지킨다는 자부심, 그리고 최근 일어나는 세계적 ‘말차 붐’에 힘입어 이곳 농민들은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하동차는 이제 국내에 머물지 않고 국외로 나가려 합니다. 최근 동유럽·북유럽 쪽에 고급차 바람이 불어서 하동차 업체들이 많이 진출하고 있어요. 하동차가 세계에서 제일 비싸긴 하지만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정곤 회장이 전하는 하동차의 다부진 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