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민조합원들의 피 같은 돈으로 수년간 쌓아온 지역농협 사업준비금 약 41억6000만원이 증발해 단 한 푼도 남지 않았다. 지역농협 경영부실 심화로 발생한 결손금을 처리하려고 사업준비금을 몽땅 털어다 썼기 때문이다. 사업준비금을 털게 만든 원인이 지역농협의 부실경영에 있음을 알게 된 조합원들은 지역농협을 향한 규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상의 상황이 벌어진 곳은 경남 거창군 남거창농협(조합장 허원길)이다.
남거창농협은 과거 거창 남부 3개 면(신원·남상·남하면)에 각각 존재했던 지역농협들이 합병을 거듭한 결과로 들어섰다. 정확히는 과거 남상·남하면에 각각 있던 지역농협이 통합해 남거창농협이 들어섰고, 2018년 남거창농협이 옛 신원농협을 흡수해 현재에 이르렀다.
인구감소 심화 상황에서 소규모 지역농협들이 독자적 길을 걸어가긴 쉽지 않았던 만큼, 거창 남부 지역농협 간 합병·흡수는 부득이한 측면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통합 결과로 들어선 남거창농협이 농민조합원을 위해 사업을 내실 있게 잘 벌였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보긴 힘들다는 게 적지 않은 남거창농협 조합원들의 반응이다.
지난해 남거창농협의 대손상각비, 즉 대출금·외상매출금 등의 채권 중 회수가 불가능하거나 불확실한 것을 비용으로 처리한 금액은 총 80억7000만원에 달했다. 2023년 8억5800만원이었던 대손상각비는 2024년 45억2000만원으로 늘었고 지난해 다시 80억7000만원으로 늘어났다. 대손상각비가 폭증한 건 그만큼 회수가 불가능하거나 불확실한 부실채권이 늘어났다는 뜻이기에, 지역농협 경영도 그만큼 악화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남거창농협의 당기순손실은 약 46억원이었다. 당시 수익 406억원 중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 및 대손상각비 80억7000만원을 같이 뺀 결과 그만큼의 손실이 났다(대손상각비 제외하면 36억원의 이익을 기록할 상황). 남거창농협이 당기순손실 46억원을 최대한 메꾸기 위해 가장 먼저 ‘동원’한 금액이 바로 사업준비금 41억6178만5526원이었다.
사업준비금은 지역농협이 조합원 대상 사업 확대 및 경제·금융사업용 투자재원 확보, 조합 자본 확충 및 재무 안정성 유지 목적으로 적립한 자금이다. 사업준비금의 기반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조합원 탈퇴 시 일종의 퇴직금처럼 돌려받는다. 남거창농협 조합원 수는 총 2313명으로, 남거창농협이 약 41억6000만원의 사업준비금을 털었다는 건 조합원 1인당 ‘퇴직금’ 180만원을 잃었다는 뜻이다. 조합원 신동환씨의 경우 약 360만원이었던 사업준비금이 단 한 푼도 안 남게 됐다.
지난 3월, 몇몇 뜻있는 조합원들이 남거창농협 부실심화 원인을 파악해 조합원들에게 알리고자 ‘남거창농협 비상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김정회·정남진, 비대위)’를 결성했다. 비대위는 남거창농협을 향해 경영 관련 정보공개를 줄기차게 촉구하는 등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 왔다. 사업준비금 증발 문제도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알려졌다.
경영진 과오로 손실 초래됐는데…변상을 채소가격 보장용 금액으로?
비대위는 손실 발생의 근본 원인으로 남거창농협의 부실경영 문제를 지적했다. 부실경영 문제는 농협중앙회 감사 과정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2023년 7월,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회 경남검사국은 남거창농협 신원지점 감사 뒤 지적사항으로 △장기근무자 순환배치 미실시 △지점 감사(일일·수시 감사) 형식적 실시 △담보물 취득 소홀 △자체 감정평가 시 비교표준지 오류 등의 문제를 거론했다. 이 중 △장기근무자 순환배치 미실시 △지점 감사 형식적 실시 건의 경우 이후 2024년 4월 경남검사국의 남거창농협 종합감사 및 같은 해 10월 남거창농협 남하지점 감사, 지난해 7월 농협중앙회 부산검사국의 신원지점 감사 결과에서도 똑같이 지적됐다.
2023년 7월 신원지점 감사 결과 드러난 감정평가 과정의 문제를 좀 더 살펴보자. 신원지점 감사 직후인 2023년 9월, 남거창농협은 채무자 최모씨의 대출금 약 12억4952만원 중 7억원 가량만 돌려받고 나머지 약 5억4391만원은 대손 처리(회수불능 금액으로 처리)했다. 남거창농협은 해당 대출 건 취급 과정에서, 채권 담보를 위해 최씨가 제공한 과수원·임야 등 8필지에 대한 감정평가를 남거창농협 자체 간이감정으로 진행했다.
문제는 간이감정을 통한 담보물 가격결정 과정에서 ‘뻥튀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남거창농협은 담보물 가격결정 시 공시지가가 1㎡당 1만9800원인 과수원에 대지 공시지가를 비교 표준지로 삼아 1㎡당 11만7300원을 적용했다. 남거창농협은 심지어 여기서도 180%를 추가로 부풀린 1㎡당 21만1140원으로 담보물 가격을 결정함으로써, 해당 지목의 실제 공시지가보다 10.66배 많은 18억8700만원으로 가격을 평가한 뒤 12억4952만원을 최씨에게 대출했다. 실제 공시지가보다 훨씬 높게 담보물을 평가하면서까지 대출을 진행한 결과, 5억4000만원이 넘는 금액의 대손 처리로 이어졌다. 두 달 전 비교 표준지 오류에 대한 지적이 있었음에도 똑같은 문제가 반복된 것이다.
남거창농협 경제사업 과정에서도 ‘사고(농협중앙회 경남검사국의 표현)’가 발생했다. 2024년 6월, 남거창농협은 지역 농가들로부터 공급받은 양파 5만8290망의 판매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계약 대상인 C영농조합법인의 신용상태, 담보 제공 유무, 결제조건 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채권보전조치도 없이 판매계약을 체결했다. 이듬해인 지난해 5월, C영농조합법인 대표는 개인회생 신청을 통보했다. 양파 판매계약은 어그러졌고, 남거창농협은 총 7억6093만1740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해당 사고에 대해, 경남검사국은 조합장 견책 등 조합 차원의 징계변상 조치를 요구했다. 여기서 또 발생한 문제는, 남거창농협이 변상 과정에서 손실액 약 7억6093만원 중 약 68%에 달하는 금액 5억1693만1740원을 조합에 적립된 ‘채소수급안정사업적립금’으로 처리했다는 점이다.
채소수급안정사업적립금은 채소값 폭락 또는 수급 불안 발생 시 농가 손실 보전 및 수급 조절 목적으로 활용코자 조합에서 사전에 조성하는 자금인데, 남거창농협은 운영진 관리부실로 발생한 사고의 처리 비용 중 70%에 해당 적립금을 털어다 쓴 것이다. 정작 조합장 등 책임자들의 자체 변상금은 2억2200만원(약 29%)에 그쳤다.
조합원이 나서지 않았다면 묻혔을 경영부실 문제
비대위가 경영부실 원인 규명을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상의 사항은 조합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지난 22일, 비대위는 거창 신원면 신바람누리센터 실내체육관에서 조합원 대상 활동보고회를 열었다.
남거창농협 부실경영 사례를 발표한 비대위 구성원 신동환씨는 “현재 남거창농협 조합원 중 70세 이상이 59.7%다. 10년 뒤 이 자리에 몇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세대에 남거창농협을 정상화시켜 올바른 길로 가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감사는 경영부실 문제 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적어도 이·감사라면 경영·회계 관련 서류는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조합원들도 조합 경영이 정상화되도록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허원길 남거창농협 조합장은 조합원들에게 사죄하며 “올해 연말엔 꼭 여러분께 다시 배당금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거창농협 측이 거론 중인 ‘경영개선계획’은 △직원 9명 인력 감축 △임직원 성과급 미지급 △상호금융대출 증대 △경제사업 활성화 등의 내용이 전부다. 이에 남거창농협 조합원들은 분노하며 “조합장은 사퇴하라”, “당장 제대로 된 정상화 대책을 내놓아라” 등의 성토를 쏟아냈다. 허 조합장 등 남거창농협 관계자들은 항의가 빗발치던 중 보고회 자리를 떴다.
이날 보고회에서 남거창농협 조합원들은 향후 대책 마련을 위한 임시총회를 열자는 데 뜻을 모으며, 임시총회 개최를 위한 서명작업에 돌입했다(조합원 10분의 1 이상이 찬성하면 임시총회 개최 가능). 다만 비대위 구성원의 절대다수가 신원면 주민이고 남상·남하면 거주 조합원의 참여가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 향후 남거창농협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려면 남상·남하면 주민 대상 설득을 비롯한 지역 내 공론화 작업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비대위 활동으로 신원면엔 현 상황을 알게 된 주민들이 늘어났으나, 남상·남하면엔 아직 부실 심화 상황을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남거창농협 조합원은 “상황이 이러하건만 지금도 (신원·남상·남하면의) 지역 유지 중엔 파크 골프나 치러 다니는 이들이 적지 않고, 자신의 출자금이 증발했는지 모른 채 무관심하거나 ‘뭐 그래도 우짜겠노. 별수 없지’라며 체념하는 조합원들도 많다”며 “이제야말로 조합원들이 힘을 합쳐 대책 마련을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부실 상태의 지역농협을 되살리기 위한 남거창농협 조합원들의 자주적 활동에 온 농업계가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