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엔 전국적으로 이름난 죽도시장이 있다.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공영주차장도 4개나 있고 죽도란 이름을 달고 있는 유료주차장도 꽤 여러 개 있는 곳이라 선뜻 시장투어를 나서기 쉽지 않다. 물론 매력적인 시장임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죽도시장을 둘러싼 거리에서는 매일 새벽시장도 열린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신선한 것은 기본이고, 가격도 싼 물건들이 지천인 번개시장이다. 아예 날을 잡고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정리하고 다음으로 미룬다.
중복이 코앞이었고, 포항엘 가기로 마음을 먹은 날은 한낮의 최고 기온이 38도라고 했다. 죽도시장을 돌아보는 건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 큰 무리였고, 근처 흥해에 장이 서는 날이었다. 전통시장을 낀 상설시장 안팎이 장으로 주변에 제법 넓은 주차장도 있고 그 규모도 작지 않아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하지만 찜통 같은 불볕더위가 아침부터 힘을 뺐다. 함께 돌아보기로 한 사람들이 아직 도착 전인 아침부터 혼자 먼저 돌아보기를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전통시장으로 들어가는 초입부터 상인들이 늘어섰다. 어느 장에서나 만날 수 있는 감자, 양파, 고랭지 여름 배추, 맛 없을 게 뻔한 여름 무, 파 등이 나와 있다.
그리고 경남지역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끓여 놓고 파는 여러 종류의 탕들이 있다. 선지국, 육개장, 고디탕, 닭개장, 해물짬뽕탕, 맛짜장, 그리고 된장찌개. 혼자 살면서 음식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면 나라를 넘나드는 이런 완성된 탕들을 고루 사다가 하루에 한 가지씩 먹으면 일주일이 너무 잘 가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기다리는 동료들이 왔다. 포항의 시장에 정선의 이름을 달고 장사를 하는 국밥집에서 소고기국밥과 정선풍의 메밀전을 먹고 본격적인 오일장투어를 나섰다.
휴가철이 시작되면 시장엔 어디를 가나 옥수수가 지천이다. 아침에 막 수확해 껍질을 입고 나온 옥수수를 까 팔거나 찌면서 파는 상인들이 호객한다. 큰 상인들이 아닌 지역의 할머니들이 자신의 텃밭을 털어 나온 좌판에도 어김없이 옥수수 몇 자루는 꼭 있다. 몇 자루 사다가 물부터 올리고 옥수수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수염은 다 떼 내고 껍질은 한 겹 남겨둔다. 그사이 물이 끓으면 옥수수를 넣고 40, 50분 삶는다. 압력솥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나는 천천히 삶으면서 옥수수 껍질과 속대에서 나온 달큰한 물을 남겨 마시길 좋아한다. 냉장고에 넣어 식혀 마시면 여름 음료로 이만한 것이 없다. 이렇게 적어도 두세 번의 옥수수 삶기가 끝나면 더위도 식을 것이다.
여름 채소의 대표주자인 오이, 가지, 호박도 지천이다. 단호박도 있고 벌써 늙은 호박도 보인다. 당뇨에 좋다고 알려진 여주도 있고 더위에 약이 올라 매울 맛이 든 고추들도 흔하다. 붉은색이 도는 제피도 있다. 그 옆에 잘 익은 박도 나왔다. 한 통 사다가 켜서 무나물처럼 볶아 먹으면 좋겠다. 무 대신 맑게 국을 끓이면 시원할 텐데 하면서 한 통 산다. 담장 밑에 심어둔 맛있는 부엌의 박은 꽃을 피우는가 싶다가 열매는 없어 서운한 참이었는데 잘 됐다.
이 계절의 과일로 수박, 참외, 자두, 토마토 등을 이기는 과일이 있다. 향으로 모든 과일을 제압하는 복숭아다. 황도와 백도, 천도로 분류되는 복숭아가 바구니에 담긴 채 단향을 풍기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껍질이 툭 터져 갈라진 천도를 한 봉지 샀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복숭아다.
여름 오일장엔 콩물과 우무묵(우뭇가사리묵)이 어디나 있다. 썰지 않고 굵은 체를 뒤집어 그 위에 올려 손바닥으로 지그시 누르면 그 아래 그릇에 국숫발 같은 우무가 수북하게 내려온다. 시원한 콩물을 부어 먹으면 콩국수를 이길 맛이라 그 유혹을 이기기 어렵다. 예전엔 모두 콩을 삶아 만든 콩물에 말아 먹었는데 요즘은 간편하게 볶은 콩가루를 시원한 물에 풀어서 먹는다. 나는 그래도 삶은 콩물에 먹는 걸 좋아한다.
시장을 돌다가 지쳐 시원한 음료 한 잔 마시고 싶어 시장 안 카페를 찾는데 편히 앉을 카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찾은 시장 골목 안의 아주 작은 포장 전문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의자는 3개만 있는데 앉아 있던 손님이 일어서며 자리를 내준다. 대부분 단골손님들이라, 다음 손님이 오면 자연스럽게 일어서는 전통(?)이 있다며 마음 쓰지 말라고 하신다.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마시는 동안, 지리산에서 흥해로 결혼해 오셨다는 60대의 카페 주인이 흥해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흥해(興海)라는 이름에서도 보듯 풍요의 상징이었던 이곳은 큰 지진이 난 이후 달라졌다고 했다. 해류의 흐름도 바뀌어 잡을 수 있는 어종도 달라지고 그 양도 현저히 줄었다고 했다. 재미난 이야기를 끝도 없이 풀어내는 주인이 일어서야 하는 내게 전화번호를 물었다. 지리산의 친정에 다녀갈 때 만나러 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오징어가 나오기 시작하고, 해산물이 싱싱해서 좋았고, 그 싱싱한 해산물을 시장 안 식당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시장 흥해오일장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나에게 더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어제 받은 카페 주인의 안부전화였다. 오일장을 돌다가 새로운 인연 하나가 시작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 흥해오일장이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