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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이다지도 어려운 내 집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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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란(강원 정선)
최보란(강원 정선)

보육, 농업, 농촌. 내가 쓰는 글의 주제가 반복된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현실은 같은 주제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번에는 주거다.

언젠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근교 도시로 이주해야 할 것 같다고 쓴 적이 있다. 막연한 마음으로 넣었던 청약이 미분양으로 덜컥 당첨됐고, 멀게만 느껴지던 3년은 이제 입주를 한 달 앞두고 있다. 아이는 더 이상 차에서 긴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나 역시 하루 네 번 하던 운전이 두 번으로 줄어든다. 생활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는 요즘, 시작이 막연한 마음이어서였을까. 집을 마련하는 과정이 정말 막연하고 아득하다.

집값을 마련하려면 당연지사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 문제는 소득이었다. 대출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청약 당첨된 다음 날부터 은행을 찾아다녔다. 은행에 다니는 사촌 동생에게도 물어보고, 인터넷도 뒤지고, AI에도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대출 실행 시점이 돼야 알 수 있습니다.’ 미리 준비할 방법도, 가능성을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오기만 기다려야 했다.

입주 두 달 앞두고 잔금대출을 취급하는 은행이 정해졌다. 기다리는 동안 알아봤던 정부 정책 금융을 신청했다. 이름부터 따뜻했다. 디딤돌, 보금자리. 서민과 실수요자를 위한 정책금융이라는 설명을 보며 생애 첫 집을 마련하는 우리도 당연히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청은 시작부터 멈춰 섰다. 필수 제출서류는 ‘소득금액증명원’. 면세사업자인 나는 그 서류를 발급받을 수 없었다. 대신 발급 가능한 것은 ‘부가가치세 면세사업자 수입금액증명’. 똑같이 소득을 증명하는 맥락이겠지. 하지만 다음 날 걸려온 전화는 예상과 달랐다. 수입금액은 소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 기준이라면 대출 한도는 신청 금액의 30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30분의 1. 와하하. 순간 허탈함에 웃음이 나왔다. 농사를 짓고, 사업자도 있고, 분명 수입도 있는데, 그들의 기준에서는 나는 소득이 없는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농업의 공익성과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면세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세금을 적게 낸다고 소득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농사를 지어 수입을 올리고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데도, 정책금융이 요구하는 방식으로만 소득을 인정한다면 농민은 처음부터 출발선에 설 수 없다.

세제와 금융은 서로 다른 영역 아닌가. 두 제도를 같은 잣대로 볼 일은 아닌데 그렇다면 농민의 현실 역시 각각의 제도 안에서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닐까. 화가 가라앉을 틈도 없이 곧바로 ‘아파트 집단 대출’로 방향을 바꿨지만 상담 예약조차 쉽지 않았다. 일주일을 기다려 겨우 상담 받고 분양계약서를 비롯한 필요한 서류를 모두 제출했다. 이제 심사만 기다리면 된다는 말을 듣고 조금 안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흘 뒤 예산이 부족해 우리 아파트 타입은 대출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다. 심사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다른 은행을 급히 알아봤지만 대부분 한도가 소진돼 상담 자체가 끝난 상태였다. 어떤 은행은 전화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정책대출도 어렵고, 일반대출도 쉽지 않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농사는 농촌에서 짓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병원과 교육, 문화시설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청년농민들은 농촌 인근 중소도시에 집을 마련하고 새벽이면 농장으로 출근해 해 질 무렵 돌아온다. 우리도 그렇다. 도시로 가기 위해 집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농촌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집을 구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제도의 기준 밖에 있다.

농촌으로 오라고 말하고, 농업을 미래 산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농촌에서 살아갈 가장 기본적인 주거 앞에서는 수많은 농민이 제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예외가 아니라 현실이다. 현실을 제도가 담아내지 못하면 사람들은 결국 제도를 피해 다른 길을 찾게 된다. 어떻게든 증빙을 만들고, 어떻게든 기준에 맞추며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가 반복될 뿐이다.

특별한 혜택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아등바등 대출 갚으며 살더라도 평범하게 집 한 채 마련하고, 아이를 키우며 오래 농사를 짓고 싶을 뿐이다.

입주까지는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대출 상담과 심사, 실행까지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절박하다. 농민도 집을 구하고, 아이를 키우고, 대출을 받고, 내일을 계획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이다. 농민도 다른 시민과 다르지 않게 삶을 계획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 그 가장 기본적인 토대에서 시작돼야 한다.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제도는 벽이 아니라, 디딤돌이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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