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제·친환경농 7~10년 장기임대 제안
(한국농업신문=류민제 기자)
2022년 기준 전체 농지의 47%가 임대차로 경작되고 임차농가도 전체 농가의 절반에 달하지만, 현행 농지법은 임대차를 예외적으로만 허용해 상당수 개인 간 계약이 법 밖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음성적 임대차로 농사짓는 임차농은 최소 임대기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농업경영체 등록과 공익직불금 신청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다. 농지 전수조사를 우려한 소유주의 농지 회수로 실경작자가 경작지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지난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실경작자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농지 임대차 제도 개편’ 토론회에서는 투기와 허위 자경을 막으면서 실경작자를 보호하려면 음성적 임대차의 양성화와 보호장치 마련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농지 47%가 임대차…법은 예외만 허용
이번 토론회는 농지의 공공성 회복과 이용·보전·관리 방안을 찾기 위한 다섯 차례 연속 토론회의 첫 순서다.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위원장 김호, 이하 농특위) 농지제도개선TF 위원인 송재일 명지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발제했고 조병옥 농지제도개선TF 단장이 좌장을 맡았다.
토론에는 박석두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사장, 유정현 전 경기도친환경농업경영인연합회 청년위원장, 윤관호 한국들녘경영체중앙연합회 사무총장, 장민기 농정연구센터 소장, 채호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사무처장, 허정은 농림축산식품부 서기관이 참여했다.
김호 위원장은 농지제도개선TF가 약 9개월간 17차례에 걸쳐 제도개선안을 검토했다며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와 투기, 임대차 확대, 농지 관련 통계체계 미흡 등을 공론화하고 토론 의견을 개선안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은 ‘농사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한다’는 경자유전 원칙을 두면서도 농업생산성을 높이거나 농지를 합리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임대차와 불가피한 사정에 따른 임대차를 법률로 인정한다.
그러나 농지법은 농지은행 임대수탁을 이용하거나 상속·이농·질병 등 법에 열거된 예외에 해당할 때만 임대차를 허용한다. 이 범위를 벗어난 개인 간 임대차는 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농지법 위반이다.
농지법상 합법적인 임대차의 계약기간은 원칙적으로 최소 3년이며, 다년생식물 재배지 등은 5년이다. 그러나 음성적 임대차는 이 같은 보호를 받지 못한다. 소유주가 임대차계약서를 써주지 않으면 임차농은 농업경영체 등록과 공익직불금 신청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토론회에서는 일부 소유자가 자경 8년 양도소득세 감면 등을 받기 위해 농업경영체 등록, 직불금 지급, 농지대장 작성 과정에서 자경하는 것으로 위장해 실제 경작자와 갈등을 빚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농지 전수조사를 우려한 소유주의 농지 회수 사례도 제시됐다.
음성 임대차 양성화…3~5년 경작 유예
송재일 교수는 전수조사에서 불법 임대차가 확인되면 소유주에게 농지 처분명령 등 책임을 묻되, 선의의 실경작자에게는 최소 3~5년간 경작을 계속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주는 방안을 내놨다.
음성적 임대차는 일정 기간 자진신고를 받아 농지은행 임대수탁 등 합법적 계약으로 전환하고 과거 불법 임대차 책임을 일부 면제해 제도권으로 편입하자는 구상이다.
송 교수는 친환경농업에는 별도의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배제하고 토양을 관리해 인증받기까지 2~3년의 전환기가 필요한 만큼 경작지를 잃으면 그동안 들인 자본과 노동이 사라지고 학교급식 등 계약재배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어서다.
이에 친환경 인증을 받았거나 전환 중인 농지의 최소 임대기간을 현행 3~5년에서 7~10년으로 늘리고, 소유주가 바뀌거나 한국농어촌공사가 농지를 매입해도 기존 친환경 임차농에게 최우선 임차권을 보장하는 특례를 제시했다.
불법 소유로 처분 대상이 된 농지는 한국농어촌공사가 우선 매입하고, 친환경농지라면 기존 임차농과 장기 공공임대계약을 맺어 영농의 연속성을 보장하자는 방안도 포함됐다.
임대차 신고제…임대인 우대·개인 간 허용
박석두 이사장은 2015년 전체 농지 168만ha 가운데 비농업인 소유 농지가 43.4%로 추정됐으며, 2022년에는 임대차 농지가 전체 농지의 47%, 임차농가가 전체 농가의 50%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영농 수입으로는 도저히 농지를 매입할 수 없는 실정이기에 농지 매입·소유 방식이 아니라 장기간 안정적으로 농지를 임차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경자유전 원칙이 농지 소유 규제 완화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는 만큼 유지하되, 헌법이 인정한 범위에서 농지 임대차를 농지의 효율적 이용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농지 임대차 신고제를 도입해 신고만으로 법률이 허용하는 임대차로 인정하고, 농지 임대차 신고대장을 작성·비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 이사장은 농업진흥지역 안에서 농지 임대차를 신고한 임대인에게 8년 자경 여부와 관계없이 농지 양도소득세를 면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농지 임대차를 합법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임대인 우대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박 이사장은 불법 임대가 적발된 소유주가 직접 농사짓겠다며 농지를 회수하면 처분명령이 유예되고 3년간 자경하면 처분명령이 해소될 수 있어 임차농을 지킬 장치가 없다고 짚었다. 보호 규정이 소급 적용되지 않으면 현재 피해를 보는 임차농은 구제받기 어렵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윤관호 사무총장은 농지은행만으로 일반 농업인의 임대차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개인 간 임대차를 허용하되 서면계약과 적정 임대기간, 계약 갱신·해지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지은행은 청년농 지원에 집중하고 일반 농업인은 개인 간 임대차로 농지를 확보하도록 역할을 나누자는 것이다. 허위 자경과 직불금 부정수급에 대한 제재 강화도 요구했다.
전수조사에 농지 회수…농지은행도 한계
채호진 사무처장은 제주도연맹이 지난 5월 22일부터 운영한 임차농 피해신고센터에 지난 1일까지 8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상속농지라 임대가 가능한데도 소유주가 전수조사를 우려해 퇴거를 통보한 사례가 포함됐다.
또 다른 상속농지에서는 소유주가 직불금을 받고 임차농이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데 대해 자료 불일치를 소명하라는 요구가 나오자, 소유주가 농지를 팔기로 하고 퇴거를 통보했다. 채 사무처장은 농민들이 전수조사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임차농이라는 이유로 법적 보호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불안도 크다고 전했다.
유정현 전 위원장은 소유주가 지난 4월 직접 농사짓겠다며 회수한 농지가 풀이 무성한 채 방치된 사례를 전하며, 농지 이용 효율화 과정에서 소규모 임차농이 영농 기반을 잃지 않도록 보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지은행이 불법 임대차에 한시적인 양성화 기회를 두고 있지만 적발 전 소유주가 자진신고해야 하는 만큼 현장 안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농지은행 임차지에서 관정과 전기 인입 시설 설치가 제한된 사례를 들며 영농투자 기준도 보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면 완화 경계…지역별·단계적 접근
장민기 소장은 규제 완화나 신고제만으로는 무너진 농지 이용질서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발제에서 제시된 해외 사례를 들어 프랑스·스위스·독일·일본 등은 농지 거래와 권리 이동, 가격, 이용을 강력한 허가제로 관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이들 분야가 이미 자율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장 소장은 도시 인근 등 투기 수요가 있는 지역과 고령화 등 지역 여건상 임대차 활성화가 필요한 지역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지이용증진사업 특례지구에서 임대차·위탁영농 특례를 적용해 농지 집단화를 추진하고, 사업 적용을 점진적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농지가 소수 법인경영체에 집중되거나 공동경영을 내세운 형식적 집단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경계했다.
선의 피해 구제 검토…농지은행 우선 활용
허정은 서기관은 전수조사로 모든 위반 농지를 처분하려는 것은 아니라며 선의의 피해자 구제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의 여부를 판단할 자료가 부족해 전수조사로 현장 데이터를 모으고 판단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성화 홍보 부족 지적에는 해당 기간 농지은행 임대수탁이 전년 동기보다 약 80% 늘었다고 답했다. 개인 간 임대차 활성화에 대해서는 헌법의 원칙과 농지 규제를 풀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법 안에서 농지은행을 통해 공공 관리되는 농지와 농지이용증진사업을 활용해 규모화·집적화를 추진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