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후 제일 처음 심어본 작물은 감자였다. 초심자가 하기 가장 쉬운 작물이라는 주변 모두의 추천에 밭 한자리를 빌렸다. 빌린 자리에는 밑거름을 주고 로터리를 치고 멀칭 비닐을 씌우고서야 감자를 심을 수 있었다. 처음 길러본 것 치고 작황은 나쁘지 않았다. 수확을 했으니 팔아서 돈으로 만들어야 했다. 감자를 담을 종이상자를 사 와서 크기별로 고르게 감자를 담아 공판장으로 감자 상자를 싣고 갔다. 나도 짝꿍도 공판장은 처음이라 감자 농사에 도움을 준 선배 농민과 동행했다. 그분은 이동하면서 공판장에서 가격을 잘 받는 법에 대한 팁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 팁들이 참 별스러워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상자는 범용으로 파는 것보다 농장 이름을 새겨 넣고 디자인이 예쁜 것이 좋은 값을 받기에 더 유리하다. 하역 때 만나는 사람, 즉 경매사들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잘해서 얼굴도장을 찍어두면 좋다. 농산물을 담을 때도 차곡차곡 넣어서 최대한 상자나 그물망의 모양이 잘 잡혀 있어야 좋다. 이런 내용들이었다.
결국 공판장에 농산물을 내는 농민은 을이라는 소리다. 내가 감자를 키울 때 들어간 비용이 얼마인지는 알 리 없고, 알 생각도 없는 사람이 내 감자의 가격을 결정하게 될 것이고 그러니 일단 감자를 보기 좋게 키워서 차곡차곡 잘 쌓는 사람으로, 그중에서도 상자가 이뻐서 눈에 띄는 어느 농장주로 기억돼야 한다.
그렇게 가격이 매겨진 농산물들이 지난 7일 청와대 앞으로 나온 것이다. 농민의 인건비는 고사하고 오른 기름값과 비료, 농약 가격은 안중에도 없는 무례한 가격을 책정받은 농민의 농산물들. 그리고서는 ‘유통마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노고에는 높은 값을 매긴, 농민의 품을 벗어난 농산물들.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로 연초마다 한 해를 계획한다. 벼 못자리 시기가 작년엔 좀 일렀던 것 같으니 올해는 미루자거나, 모내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끝낼 것인지, 논에 콩을 심기 전에 퇴비는 언제쯤 넣을 것인지와 같은 일들에 대해 지난해까지 이미 수두룩하게 쌓인 실패와 아쉬움의 경험을 발판삼은 희망찬 계획을 세운다. 올해도 역시 만족스러운 수확기를 위한 원대한 계획을 갖고 봄을 맞이했다.
그런데 계획한 대로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전쟁의 여파로 너무 많이 올라버린 기름값 때문이었다. 그간 농사에 투자하느라 우리가 유용할 수 있는 현금자산 규모는 빈약했고, 치솟는 기름값에 외상거래를 해주던 곳들도 난색을 표했다. 때문에 제일 바빠야 할 4월 말에는 기계를 움직일 수 없었다. 기름값의 폭등은 모든 국민에게 불편을 안겼지만, 우리에겐 더욱 치명적이었다. 비료 가격도 같이 올라서 2020년에는 20kg 1포대 9000원하던 것이 올해는 2만2000원이 되었다. 그 타격은 이제 연말에 몰려올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쌀값과 콩값이 기름값과 비룟값이 오른 것을 알아주려나. 그럴 리가.
그러니 요즘 같은 때에 일은 고되나 벌이는 되지 않는 농사를 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대부분의 농가가 일을 할수록 손해를 보는 이 문제, 어리석은 일을 스스로 선택한 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만 남길 바라겠지만 그런 낙관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농민의 삶을 넘어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사는 일과 직결될 일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왜 생활비를 주면서까지 농사를 지을 사람을 모집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농촌은 쇠퇴하기만 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농업에 쓰이는 예산을 아까워만 할 것이 아니라 어느 불필요한 곳으로 새어나가기에 예산 집행이 목적한 효과를 내지 못하는지, 농민은 애호박 1개를 250원에 팔았다는데 내가 사는 애호박은 왜 1000원이 넘는지 궁금해야 하는 건 농민만의 몫이 아니라 온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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