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를 끝내고 한창 들녘을 돌봐야 할 농민들이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 위로 나섰다. 지난 7일 청와대 앞에서는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강행에 분노한 전남광주 영암군민들의 결의대회가 열렸고, 국회에서는 재생에너지 이격거리 시행령 규탄을 위한 농민들의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두 현장의 목소리는 모두 농촌을 대도시와 기업을 위한 전력 식민지로 전락시키는 행태를 당장 멈추라는 요구로 모아진다.
전기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곳은 수도권의 반도체 공장인데, 정작 초고압선의 위협과 고통은 왜 전국의 농산촌 주민들이 짊어져야 하느냐는 것이 농민들의 뼈아픈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전기를 실어 나를 철탑뿐아니라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이어진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최근 입법예고한 재생에너지 이격거리 완화 시행령이 대표적이다. 이는 농산촌의 삶의 터전을 붕괴시키는 독소조항 그 자체다.
정부는 태양광 200m, 풍력 1000m라는 상한선을 일률적으로 강제해, 전국 30여개 지방정부가 제정한 2km 이상의 이격거리 조례를 단숨에 무력화하려 한다. 특히 가구 간 거리가 먼 농촌 현실을 무시하고 ‘5호 미만’ 가구를 보호 대상에서 아예 배제함으로써, 외딴 농가 주민들과 미등기 주택 주민들을 거대한 발전설비의 소음과 저주파 피해 한가운데로 내몰고 있다. 더욱이 식량안보의 최후 보루인 사유농지 보호 규정마저 빠져 있어, 지주들이 발전사업자에게 땅을 내줄 때 땅을 빌려 농사짓던 임차농들은 하루아침에 쫓겨날 수밖에 없는 벼랑 끝 처지다.
정부는 최근 반도체와 AI 산업 육성을 위해 수천조원 규모의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만약 정부가 진정으로 이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물도 전기도 없는 수도권에 기어이 거대한 공장을 짓겠다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계획부터 취소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강원, 경상, 충청 등 전국 각지의 수많은 농민과 농산촌 주민들이 자신들의 머리 위로 지나갈 고압선과 마을을 뒤덮을 발전 설비에 불안에 떨며 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대기업과 수도권만의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 전체 농산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송전탑 강행과 이격거리 시행령 개악을 당장 멈춰야 한다. 만약 이 정의롭지 못한 정책이 계속된다면, 정부는 농민과 농산촌 주민들이 하나로 연대해 일으킬 거대한 저항의 불길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