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핑거 양복점’ 주인 이정구씨가 소년 시절에 지방 읍내 양복점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던 때가 1960년대 초반이었는데 그보다 10년쯤이 늦은 1973년, 부산의 ‘한독직업학교’에서는 또 한 명의 미래의 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기술 연마의 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경상도 합천 출신으로, 지금(2001년)은 인천 남동공단에 자리한 ‘한국교세라정공(주)’의 기술연구소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인 김을곤씨가 그 사람이었다.
“나름으로는 치밀한 계산 끝에 한독직업학교 입학을 결정했어요. 그 학교를 나오면 대졸자 못지않은 대접을 받으면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요. 우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대졸자보다 4년 먼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잖아요. 그다음으로, 대학 나온 사람들은 군대에서 3년을 의무 복무해야 했는데, 이 직업학교를 나와서 2급 기능사 자격을 취득한 다음에 방위산업체에서 5년간 근무하면 병역이 자동 면제가 됐습니다. 그 5년 동안 월급 받고 직장 생활을 한 거니까 대졸자보다 7년을 앞서가는 거잖아요.”
김씨는 그런 꼼꼼한 계산 끝에 고등학교 학력이 인정되는 한독직업학교에 진학을 했다는 것이다. 학교 이름이 ‘한독’이었던 것은, 한국의 직업교육을 지원하겠다는 독일 정부의 약속에 따라 세워진 학교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부산기계공고의 전신이다.
그럼 이제 그 시절의 그 학교로 들어가 보자. 아침 6시, 교정에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어서 당직 교사가 호루라기를 휘리릭 휘리릭 요란하게 불고 나서 소리친다.
-기상나팔 소리 안 들리나! 빨리빨리 일어나서 5분 내로 일조 점호 집합해라!
기능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국비로 운영되던 그 학교는, 학생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했다. 모든 일과가 군대식이었다.
“기상나팔 불면 5분 이내에 집합해야 하고, 재건체조 끝나고 나면 해운대 동백섬까지 왕복하는 구보를 해요. 돌아와서 세수하고 식사하고 등교를 하지요. 딱 군대식이에요. 밤 10시에 취침 점호를 하고요. 그런데 신입생으로 들어갔을 때 젤 무서운 사람은 2, 3학년 선배들이었어요. 실습 시간에 선배들의 위세가 군대 고참병 저리 가라 할 만큼 엄격했다니까요.”
수업 시작 전, 실습실에 들어가면 선배가 먼저 복장 검사부터 실시한다.
-1학년 3반 조용남, 복장이 이기 뭐꼬? 그라고 안전화는 와 안 신었노?
-예, 지금 신고 오겠습니다!
-뭐? 지금 신고 오겠습니다? 안전화 안 신고 실습하다가 쇠붙이가 떨어지면 발가락이 박살 난다는 주의 사항 들었나 몬 들었나?
-들었습니다!
-니는, 하느님보다 더 높은 선배의 주의 사항을 무시한 죄를 범했으니, 빠따 다섯 대를 맞는다. 엎드려뻗쳐!
걸핏하면 소위 ‘빠따’ 세례를 받아야 했고, 학교 밖으로의 외출 역시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드디어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고, 신입생의 첫 실습 시간이 시작된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실습에 들어가겠다. 너희들 저쪽에 있는 저것들이 뭘로 보이나?
-그거 연탄 아잉교?
교실에 웃음이 터진다. 아닌 게 아니라 실습실 한쪽으로 19공탄 크기의 원통형 물체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이런 녀석들. 이까짓 날씨가 춥다고 웅크리고 있으니까 쇠붙이가 연탄으로 보이지. 자, 보다시피 이것은 너희들 표현대로 딱 연탄만한 크기의 쇳덩어리다. 1학년 기초 공통 실습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줄로 쇠를 갈아내는 작업이야. 이 연탄만한 쇳덩어리를 줄로 갈아서, 밑변의 지름과 높이가 각각 5센티미터가 되는 원기둥으로 만들어내는 게 과제다. 알겠나?
-선생님요, 질문이 있심더. 그 큰 쇳덩어리를 기계로 안 하고, 손으로 줄을 잡고 갈아서 가로세로 5센치밖에 안 되는 쪼맨한 모양으로 맹글어야 한다, 이 말씀입니꺼?
-여태 한 얘기 뭘로 들었나? 뛰어난 기능공이 되려면 쇳가루 한 가마니는 마셔야 하는 거야!
신입생들은 첫 시간부터 기가 죽는다. 그것을 이른바 ‘아베베(ABB) 과정’이라 하는데, 1학년 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 거치는 기초 실습 교육이다. 쇠를 자르고 깎는 등 강도 높은 수작업을 통해서 인내심을 기르고 기계 가공의 기본기를 다지는 과정이다.
우리의 김을곤 신입생은 잘 적응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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