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원재정 편집국장·정리 유승현 기자]
농민헌법 연구용역 회의를 마치고 인터뷰 자리에 앉은 김호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 위원장의 표정에는 만족감과 확신이 가득했다. “하나하나 해결해가고 있다”며 미소를 지은 김 위원장은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머릿속을 온통 ‘농특위’와 ‘농민’ 생각으로 채우는 현장형 학자이자 활동가다. 지난해 8월 임명돼 어느새 1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대학시절 “평생 농민과 함께 하겠다”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농업경제학자의 길을 걸어온 그가 이제는 장관급 위원장으로서 한국 농정의 대전환을 이끌고 있다. 형식과 권위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오직 ‘농민이 잘사는 세상’을 위해 달리고 있는 김호 위원장을 만나 향후 농정 개혁의 청사진을 들었다.
현장 농정, 방문 넘어 ‘문제 해결’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정책의 출발과 완성은 현장에 있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전국 타운홀 미팅 등 소통 행보를 이어왔다.
“저는 단순히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현장 농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도 답도 현장에 있다’는 말은 현장의 문제를 직접 찾아내고 이를 실제로 해결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추구하는 진짜 현장 농정입니다.”
그는 농특위원장 취임 전에는 농정 전체의 큰 틀과 철학을 찾는 거시적 관점에서 농업 문제를 접근했다면, 위원장이 된 지금은 현장의 목소리를 구체적인 정책과 행정적 실행으로 옮겨야 하기에 훨씬 더 세밀하고 자세하게 현장을 살피고 있다.
실제로 현재 농특위는 23개 TF와 3개 특별위원회, 5개 분과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2019년 기구가 신설된 이후 현재 김호 위원장까지 총 4명의 위원장이 거쳐 갔지만,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위원회를 동시에 가동한 적은 없었다. 통상 10여개의 기구를 운영하는 정부의 다른 직속 기구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활동량이다.
“이 기구들 자체가 바로 ‘현장’입니다. 공무원 참여는 최소화하는 대신 책임 있는 결정을 위해 국·과장급을 배치했고, 대다수 구성원은 생산자, 현장 농민, 먹거리 활동가들로 구성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농지 TF’는 지난해 11월부터 월 2회 이상, 총 15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토론 결과를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으며, 국회 토론회를 거쳐 곧 구체적인 정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전국적인 농지 전수조사를 준비 중인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역시, 실무 준비 과정에서 농특위 농지 TF의 연구 자료와 현장 자문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큰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문기구 한계, ‘정책 현실화’로 증명할 것
농식품부가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이라면, 농특위는 해당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거버넌스 기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농특위가 가진 자문기구로서의 실행력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김호 위원장은 이러한 세간의 우려를 일축하며 정책의 실효성을 강조했다.
“농특위의 존재감은 ‘정책 현실화’에서 나옵니다. 자문기구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현장과 깊이 소통해 농민이 진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해내면 농특위의 존재감은 자연스럽게 증명됩니다.”
실제로 요즘 현장 농민들 사이에서는 “농특위가 확실히 눈에 보인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농특위는 정책 입안 후 집행기관인 농식품부 등이 실행하는 단계에 접어들면, ‘부처 이행점검 기능’도 철저히 수행할 계획이다. 비록 법적인 강제 권한은 없지만, 약속된 정책의 이행 여부를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등 부처를 독려해 실행까지 책임지고 견인하겠다는 의지다.
또 김 위원장은 물가안정이나 재해관련법 처리는 농식품부의 소관이지만, 농특위는 대통령 직속 기구이기에 범부처 협력 사업을 다방면으로 기획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농어촌기본소득, 농산물 가격, 농지제도 등 굵직한 농정 현안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농어촌기본소득, ‘n차 순환’ 효과↑
김 위원장은 농어촌기본소득의 핵심 성공 조건으로 ‘지역 내 소비’를 꼽았다.
“농어촌기본소득은 반드시 지역 안에서 소비돼야 가치가 있습니다. 원료의 생산부터 유통, 가공, 최종 소비까지 지역 내에서 연속적으로 회전하는 ‘n차 순환’ 구조를 넓혀야 합니다. 그래야 지역 승수 효과가 발생하고, 궁극적으로 농가 소득도 함께 늘어납니다.”
이를 위해 농특위는 농어촌기본소득 실시 지역 중 현재 전국 10개 지역을 선정해 주민 간담회를 진행 중이며, 이는 7월 중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번 간담회를 통해 실거주자 확인 과정에서의 주민 마찰이나, 보청기 등 필수 의료기기 구입시 지역화폐 사용처 제한 완화 요구 등 현장의 애로사항을 생생하게 청취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 목소리들을 하나로 종합해 실효성 있는 정책 개선안을 곧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농산물 ‘공정가격’ 보장해야
또 다른 큰 현안으로 농산물 가격 폭락이 있다. 소비자들은 밥상 물가가 비싸다고 하지만 농민들은 정작 제값을 받지 못해 위기인 요즘이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며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을 촉구했다.
“인식의 오류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농산물은 기후 등에 따라 가격 등락이 심해 체감물가가 크게 느껴질 뿐, 전체 물가지수를 높이는 주범이 아닙니다. 가공식품이나 외식 비용에서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인건비, 임대료, 유통비에 비해 크지 않습니다. 한 번 오르면 내리지 않는 외식 물가의 핑계를 농산물에 대면 안 됩니다.”
이에 따라 농특위는 농민들이 안심하고 생산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적정 이윤이 반영된 ‘공정가격’이 얼마인지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용역 연구를 진행 중이다. 농특위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대국민 홍보를 전개해 농산물 가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해 나갈 계획이다.
‘가짜 농민’ 거르고 ‘경자유전’ 확립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농정 대전환의 출발점으로 ‘농업인 정의 개선’과 ‘농지제도 손질’을 전면에 내세웠다. 현재 1000㎡(약 300평) 이상의 농지에서 농사를 지어야 인정받는 등의 농업인 규정은 20년 전 기준이라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는 귀촌인의 부정수급이나 꼼수 직불제 수령 등 정책 자금이 새는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이른바 ‘가짜 농민’을 걸러낼 구체적인 방안을 물었다.
“TF 등 현장과 논의를 거쳐 마련한 큰 틀은 ‘농민’과 ‘농업인’을 명확히 분리하는 것입니다.”
농특위는 ‘농민’의 범위를 도시농부와 농촌 주민까지 폭넓게 포괄해 보편적인 지원을 하되, 직업인으로서의 ‘농업인’은 품목별·영농방식별 경작 규모를 세분화하고 촘촘하게 규정해 정책을 집중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농특위는 안이 정리되는 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지역별 토론회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계획이다.
농지제도 개혁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실제 농사짓는 사람만 땅을 소유한다’는 헌법적 가치를 강조했다.
“‘농지를 소유했으면 농사를 지어라’라는 헌법 제121조를 바탕으로, 실경작자 보호와 농지농용(農地農用) 원칙을 반드시 바로 세울 것입니다.”
이를 위해 농특위는 그동안 TF를 통해 도출한 11개 의제를 4대 핵심 의제로 압축해 정리했다. 구체적으로는 △농지세제 개편(양도소득세 감면 제도 등) △농지임대차제도 개선(실경작자 보호 특례 및 친환경농업 특별보호) △농지관리 전담기구 설치 및 종합 DB 구축 △농업진흥지역 관리 및 농지보전부담금 대폭 상향 등이다. 농특위는 이달 초 수정 보완 작업이 마무리되면 국회 토론회를 거쳐 올 하반기 정부와 의회에 정식으로 정책을 제안할 예정이다.
논의 끝, 실행만 남았다
김호 체제 농특위는 형식과 의전이 아닌 ‘현장 소통-충분한 논의-공론화-정책 실현-현장 체감’으로 이어지는 정책 추진 과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이전 농특위와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꼽힌다. 직전 농특위가 의전을 중시해 일부 단체들이 소통을 꺼려했던 때와 비교하면 큰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이 대부분 TF 회의에 직접 참석해 현장 토론을 경청하는 이유기도 하다.
“장관이 앞서냐 위원장이 앞서냐가 뭐가 중요합니까? 농민이 잘사는 게 중요하지요. 제가 약속드릴 변화는 ‘현장의 목소리가 실제 정책이 되는 농정’입니다. 국가책임농정, 재생에너지, 식량주권이라는 확고한 농정대전환을 끝까지 제대로 실현하겠습니다.”
지난 1년간 가장 의미 있는 성과와 남은 임기 동안 반드시 이루고 싶은 과제를 하나만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잠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많아요. 이재명정부의 농특위는 하나만 해서는 안됩니다. 모두 다 해내야 합니다.”
짧은 답변이었지만, 농특위에 부여된 역할과 책임을 모두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제가 평생을 외쳐온 농정 현안 대부분이 이재명 대통령의 농정 철학에 80%이상 반영돼 있습니다. 평생 바랐던 농정을 농특위 직원들과 제 손으로 직접 실현하고 있어 보람차고, 힘든 줄도 모르고 지내고 있습니다.”
예정했던 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 내내 김 위원장은 어떤 질문에도 망설임 없이 자신의 생각을 술술 풀어냈다. 그의 선명한 답변들 속에는 농정에 대한 깊은 고민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공들여 연구하고 치열하게 논의했던 준비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공론화와 정책 입안이라는 결실을 하나씩 보여줄 그의 남은 임기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김호 농특위원장은 고려대 농업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농업개혁위원장·상임집행위원장, 한국농식품정책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학계와 시민사회, 현장을 아우르며 농정 발전을 이끌어온 농업경제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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