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사 업무 부담 크지만 확대 필요성에는 공감
인센티브·전담인력·디지털 거래체계 구축 제안
(한국농업신문=박현욱 기자)
정가·수의매매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산지 조직화와 물류 표준화, 경매사 인센티브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매사들은 거래 협상과 물량 확보 등에 따른 업무 부담을 크게 느끼면서도 유통환경 변화에 맞춰 정가·수의매매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홍진 한국도매시장법인협회 과장은 지난 11일 열린 한국농식품유통학회 학술대회에서 ‘정가·수의매매 활성화를 위한 과제’를 주제로 발표하고 이같이 밝혔다. 이번 발표는 전국 도매시장법인 소속 경매사 1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뤄졌다.
이 과장은 “국내 정가·수의매매 비중은 2010년대 중반 20% 수준까지 높아진 뒤 정체된 상태”라며 “거래가 확대되지 못하는 원인을 제도와 현장 여건에서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설문조사 결과 정가·수의매매 활성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경매사의 업무 부담으로 조사됐다. 거래 상대방과의 가격 협상, 출하 물량 확보, 품질관리, 가격 변동에 따른 책임 등이 주요 애로사항으로 꼽혔다.
경매는 정해진 시간에 출하된 물량을 거래하는 방식이지만 정가·수의매매는 거래에 앞서 출하자와 구매자를 확보하고 가격과 물량, 규격 등을 협의해야 한다. 거래가 성사된 이후에도 품질과 납품 일정 등을 관리해야 해 경매사의 업무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경매사들은 정가·수의매매 확대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했다. 향후 정가·수의매매를 확대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도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이 과장은 “대형 유통업체와 외식·급식업체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물량과 가격을 요구하는 예약형 거래가 늘고 있다”며 “도매시장 현장에서도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가·수의매매 확대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가·수의매매에 적합한 품목으로는 양파와 사과, 배, 토마토 등이 제시됐다. 저장성이 높고 규격화가 비교적 쉬우며 대량·고정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는 품목일수록 정가·수의매매 확대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엽채류처럼 저장성이 낮고 부패가 빠르며 출하량과 품질 변동이 큰 품목은 경매 방식이 상대적으로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품목별 생산·유통 특성을 고려해 거래방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정가·수의매매 운영 사례도 소개됐다. 일본은 대형 소매업체와 외식업체의 안정적인 공급 요구에 대응하면서 정가·수의매매 비중을 확대해 왔다. 현재 일본 도매시장에서는 경매보다 정가·수의매매가 주요 거래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정가·수의매매는 거래 이전에 가격과 물량을 협의하기 때문에 급격한 가격 변동을 줄이고 생산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안정적인 거래 여건을 제공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산지는 출하처와 가격을 미리 확보할 수 있고 구매자는 필요한 규격과 물량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거래 당사자 간 협의로 가격이 결정되는 만큼 거래 투명성 저하와 정보 비대칭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됐다. 일본은 거래정보 공개와 유통 분야 디지털 전환, 내부통제 강화를 통해 이 같은 문제를 보완하고 있다고 이 과장은 설명했다.
이 과장은 국내 정가·수의매매 활성화 방안으로 ▲산지 조직화와 상품 규격화 ▲물류 표준화와 비용 지원 ▲경매사 인센티브 및 평가체계 개선 ▲전담 인력 확충 ▲디지털 거래 시스템 구축 ▲불법·탈법 거래 감시체계 마련 등을 제안했다.
특히 정가·수의매매 실적을 경매사와 도매시장법인의 평가에 반영하고, 거래 성사와 사후관리 업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지의 안정적인 물량 공급과 품질관리 능력을 높이고 표준화된 물류체계를 구축하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과장은 “정가·수의매매는 거래방식만 바꾼다고 확대되는 것이 아니다”며 “산지 조직과 도매시장, 물류체계, 경매사 평가제도를 함께 정비해야 실질적인 활성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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