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동네마다 구멍가게가 하나씩 있었다. 아이들은 낮이고 밤이고 수시로 들락거리며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자주 가다보면 가게 주인과도 자연스레 얼굴을 익혔다.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었지만, 동시에 동네의 작은 사랑방이기도 했다.
요즘엔 그런 장면을 보기 어렵다. 구멍가게 자리는 대부분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물건은 많아졌고 계산은 빨라졌지만 서로의 취향을 기억하고 안부를 묻는 공간은 줄었다. 동네에 사랑방 같은 가게가 거의 사라졌다. 정육점 한곳 빼고는.
정육점에서는 아직 질문이 오간다. 국거리인지, 구이용인지, 불고기용인지부터 묻는다. 기름이 조금 있는 걸 좋아하는지, 담백한 쪽을 원하는지. 오늘 바로 먹을 건지 며칠 뒤에 먹을 건지 물을 때도 있다. 소고기는 어느 부위인지, 얼마나 두껍게 썰었는지, 어떻게 익힐 것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 한국 사람이 유난히 소고기 부위를 세세하게 나누고 따지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덕분에 정육점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가맹점이 득세한 지금까지도 동네의 개인 매장으로 살아남았다.
소고기 부위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기준으로는 대분할 10개, 소분할 39개로 나뉜다. 같은 소여도 어디를 먹느냐에 따라 맛·식감·조리법이 달라진다. 등심·채끝·안심처럼 구워 먹기 좋은 부위가 있고, 양지·사태처럼 오래 끓였을 때 제맛이 나는 것도 있다. 등심은 지방이 적당히 섞여 고소하고, 채끝은 씹는 맛과 감칠맛이 좋다. 안심은 부드럽지만 지방이 적어 담백하다. 양지·사태는 구우면 질기게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오래 끓이면 고기 속 결합조직이 젤라틴으로 변하면서 국물은 진해지고 고기는 부드러워진다. 설렁탕·곰탕·장조림에 어울리는 부위다.
따지고 보면 소고기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자연에서 얻어온 농축된 영양 공급원이다. 양질의 단백질이 풍부하고 철·아연, 비타민B12도 들었다. 사실 이런 설명조차 필요 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기가 좋은 음식이라는 걸 안다. 생명에 필수적인 나트륨의 짠맛, 아미노산의 감칠맛, 지방의 고소함은 고기를 씹을 때 혀와 코의 감각으로 즉각 느껴진다. 젖을 떼고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고기가 맛있다는 사실은 배우지 않아도 금세 알 수 있다.
물론 본능이 적당한 선까지 알려주진 않는다. 고기도 지방이 많은 부위를 너무 자주 많이 먹으면 포화지방 섭취가 늘 수 있다. 또 잘 알다시피 고기를 태워 먹는 습관도 좋지 않다. 좋은 식재료일수록 양과 조리법이 중요하다. 구울 때도 마찬가지다. 맛있는 고기 굽기의 핵심은 태우는 것이 아니라 갈색으로 익히는 것이다. 고기 표면에 열이 닿으면 아미노산과 당이 반응해 갈색으로 변하면서 고소한 향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구운 고기에서 느끼는 풍미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나온다. 그렇다고 무작정 센 불에 오래 올려두면 겉은 타고 속은 마르기 쉽다. 얇은 고기는 빠르게 익혀 먹고, 두꺼운 고기는 겉면에 먼저 색을 낸 뒤 속까지 열이 천천히 들어가게 두는 편이 낫다. 고기를 잘 굽는다는 건 무조건 불을 세게 쓰는 일이 아니라 부위와 두께에 맞게 열을 조절하는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떠오르는 곳이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고기터’는 한우·한돈을 취급하는 정육점을 오래 운영하다가 식당까지 함께 연 곳이다. 분당에는 이렇게 작은 정육점과 식당을 겸한 곳이 제법 많다. 안창살·토시살처럼 육향이 강한 부위는 주인장에게 미리 부탁하면 잘 손질된 것으로 즐길 수 있다. 동네 사랑방 같은 이런 곳이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기를.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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