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을 불러오는 음식이 있으니 복숭아가 그중 하나다. 한입 베어 물면 과즙이 팡 터지고, 그 향긋함에 여름이 와락 밀려온다. 후터분한 날씨마저 달콤하게 바꾸는 마법 같다. 제철 맞은 이 과일을 어찌 그냥 보낼 수 있으랴. 이번 여름, 복숭아의 진면목을 찾아 산지로 떠나봐야겠다.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없는 맛을 찾아 최근 경북 영천의 농장 ‘별빛농부’로 향했다.
별빛농부에서는 독특한 체험이 열린다. 복숭아 수확이 대표적이다. 나뭇가지에서 온전히 익은 복숭아를 그 자리에서 맛볼 기회다. 보통 6∼8월에 모집하며, 이 기간 여러번 방문해도 좋다. 농장엔 10개가 넘는 품종이 있어 시기마다 다른 복숭아를 만날 수 있다. 6월엔 천도와 백도를 섞은 듯한 ‘신비’, 7월엔 은은하게 단 ‘창방’, 8월엔 ‘환타지아’가 손님을 맞는다. 1인당 1㎏를 가져갈 수 있고 참가비는 1만8000원이다.
“자, 주목하세요! 여기서 가장 잘 익은 열매가 뭘까요?”
높이가 2∼3m 되는 복숭아나무가 죽 늘어선 밭. 수확 체험이 한창이다. 방문객 앞에 선 농장주 김은희 대표가 문제를 내자 여기저기서 대답이 쏟아진다. “저기, 색깔이 빨간 것이요!” “크기가 제일 큰 놈이요!” 김 대표는 방긋 웃으며 “사실 꼭대기에 정답이 숨어 있다”며 “꼭지 부분에 초록빛이 돌지 않아야 제대로 익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목표가 정해졌으니 한번 따볼까요?”
김 대표를 따라 나무로 다가간다. 초록 잎 사이로 탐스러운 과실이 주렁주렁 달렸다. 잘 따는 비결은 바로 ‘돌리기’다. 줄기를 잡아당기지 말고 열매를 한손으로 살포시 감싼 뒤 손목을 가볍게 돌리면 된다. 힘껏 움켜쥐는 건 금물. 과육이 여려 손자국이 그대로 멍으로 남는 탓이다.
손을 뻗어 보드라운 열매를 똑 떼 코끝에 대본다. 어떤 향수도 흉내 내기 어려운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청도에서 온 박동규씨는 “어쩜 이리 탐스럽게 열렸냐”며 “다디단 향기에 취해 따다보니 바구니가 금세 찼다”고 감탄했다. 전북 김제에서 온 박성구씨도 “가족들이 내가 딴 복숭아만 기다리고 있다”며 “마트에서 구입해 후숙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체험농장의 또 다른 기쁨은 요리 수업이다. 전날이나 당일 새벽에 따둔 것으로 온갖 간식을 만든다. 그중 신청자가 많은 건 제조 과정이 간단한 청과 식감이 부드러운 케이크다. 마침 두가지 수업이 모두 열린다는 소식에 농장을 다시 찾았다.
오전엔 인근 어린이집에서 청 만들기에 나섰다. 준비물은 간단하다. 병·설탕·복숭아다. 주로 털 없이 매끈한 ‘천도’나 ‘신비’를 사용하는데, 털이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어서다. 김 대표가 새벽에 따둔 복숭아 앞으로 아이들을 불러 모으며 “맛있어 보이는 걸로 골라보자”고 안내한다. 고사리손이 쑥 나와 제 손보다 큰 복숭아를 붙잡는다. 한 아이는 복숭아를 꼭 껴안고 “엄마 줄 거예요”라며 배시시 웃는다. 벌써 입에 넣은 아이도 있다. 선생님이 말려도 한번 맛본 달콤함에 볼이 점점 통통해진다.
이제 청을 담글 차례. 그릇에 잘게 썬 과육과 설탕을 넣고 골고루 버무린다. 이때 물이 들어가면 금방 상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청은 탄산수나 물에 타 에이드·차로 즐겨도 좋고, 빵과 곁들여 먹어도 잘 어울린다. 복숭아청이 가득 찬 병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얼굴마다 복사꽃이 피었다.
오후엔 치매안심센터에서 복숭아 케이크 수업이 이어졌다. 이번엔 어르신들이 참여했다. 먼저 ‘창방’과 ‘천도’를 먹기 좋은 크기로 깍둑썰어 준비한다. 그다음 빵 위에 생크림을 바르고 과일을 소복이 얹는다. 아낌없이 들어가는 복숭아에 요즘 유행하는 과일 가득 케이크가 부럽지 않다. 마지막으로 껍질로 장식하면 완성. 한 숟갈 떠먹은 어르신은 “평생 맛본 것 중 손에 꼽을 만큼 달다”며 “며느리 집에도 보내고 싶은데 방법이 있느냐”고 묻는다. 김 대표는 “이렇게 복숭아를 보고 느끼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여름이 무르익는 7월, 복숭아밭에선 분홍빛 꿈이 영글어간다. 과수원에서 누군가는 태곳적 천진함을, 또 다른 이는 미래의 풍요로움을 떠올리겠지. 이 무릉도원에서 신선의 과일을 훔친다고 해서 죄가 될 리 만무하다.
영천=조은별 기자 goodstar@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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