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업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이 이례적으로 높다는 건 지난 1년여 동안 입증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정책 자체에 함몰돼 ‘농민’을 바라보지 못하고 좌우에서도 이를 보좌하지 못한다면, 모처럼의 동력은 엉뚱한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지난 16일 농림축산식품부의 대통령 업무보고는 그런 측면에서 농민들에겐 다소 답답하고 우려스러운 모습이었다.
이재명 농정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밥상물가와 반려동물의 수렁
이날 농식품부를 대상으로 한 이재명 대통령의 첫 업무점검 주제는 계란값이었다. 계란 수입 상황을 묻는 이 대통령의 질의에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2억3000만개의 계란을 수입 중이라 답했다. 일일 4900만개를 소비하는 국내 시장에서 4~5일치 밖에 안되는 물량이지만, 적재적소에 공급돼 충분히 가격을 하향견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대통령은 “농작물 가격은 진폭이 다른 것보다 크다. 물가 안정에 좀 더 신경쓰라”는 당부를 전했다.
이 장면이 아쉬운 건, 대통령도 장관도 이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농산물 가격에 있어 ‘밥상물가’ 관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산물 대부분의 품목이 폭락한 상황이지만 대통령과 장관의 화두론 유독 계란값 상승만이 등장했고 폭락에 관한 언급은 전무했다. 지난 14일 국무회의까지 무대를 넓혀도 농산물 가격과 관련해선 ‘유통개혁’ 정도가 등장했을 뿐, 실질적 폭락 대책이나 최근 농업 현장의 화두인 ‘공정가격’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설명에 따르면 7월 현재 전년대비 계란 생산량 감소폭은 겨우 0.1%. 그럼에도 송 장관은 굳이 ‘소비량 증가’까지 들어 수입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가격상승→수입→가격하락’의 작용이 건재함을 강조했다. 이는 앞으로의 농산물 가격정책 역시 물가·수입 관리가 주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동물복지 역시 농민 입장에선 불편한 주제다. 윤석열정부에서 농식품부의 반려동물 업무가 대폭 확장된 이래 농식품부는 주요 사업계획과 예산편성마다 이를 반드시 큰 비중으로 포함시키고 있는데, 사실상 복지·가족 정책 영역임에도 농업예산과 인력을 전용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이날 업무점검에선 동물복지가 농업 관련 공공기관을 밀어낼 가능성까지 등장했다. 재정부담에도 불구하고 ‘동물복지진흥원’ 설치를 서두르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농담조로 “농식품부의 다른 기관을 하나 줄이시면…(좀 더 쉽게 설치할 수 있다)”이라 말하자 송 장관이 “알겠습니다, 그리 하겠습니다”라며 적극적으로 긍정했고, 이 대통령 또한 “그것도 방법이겠다”라고 거들었다. 농업 현장에선 ‘농지관리청’ 신설을 절실한 과제로 꼽고 있는 마당에, 오히려 있던 농업 공공기관마저 사라질 위기가 닥친 것이다.
9조에서 18조 될 농특세,
농업·농민에 사용될 수 있을까
농민들의 마음이 긍정적으로 동할 만한 장면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시장개방으로 인한 농업 피해를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한-중 FTA를 계기로 2017년 조성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문제를 짚었다. 이 기금은 올해까지 1조원 조성을 목표로 했지만 기한이 종료돼 감에도 3000억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대통령은 “무책임한 거다. 기업들에게 의무적으로 차출한 게 아니라 선의에 맡겼다. 정부가 ‘장난 친’ 것 같다”며 “부족분인 7000억원 정도를 정부가 대신 책임지면 좋겠다”고 말했고, 김용범 정책실장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농어촌특별세(농특세) 늘어난 부분으로 해도 되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답했다.
김 실장이 거론한 농특세는 농어업 투자를 위해 소득세·법인세·관세·취득세·증권거래세 등과 연계해 징수하는 세금인데 최근 증시 활황으로 세수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세입 실적이 9조2000억원, 예산 설계 과정에서 책정했던 올해 세입 예상치가 8조5000억원인데 현재는 18조원 이상으로 예상치가 상향돼 있다.
다만 그 활용 방안은 1차적으로 ‘농어촌기본소득’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현재 17개군에서 시범운영 중인 농어촌기본소득을 본사업화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재원인데 마침 농특세 폭증이라는 호재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우려는 있다. 증시 활황에 기댄 일시적 세수 증가로 농어촌기본소득 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둘째치고, 농업정책 내 예산 경합 문제도 있다. 농어촌기본소득은 수조원 단위의 예산을 요하는 대형 사업이다. 가뜩이나 재정당국이 농업예산을 홀대하는 상황에서, 순수 농업예산의 추가 긴축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농어촌기본소득은 행정안전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장에선 농산물 수매자금(농안기금) 부족으로 수매가 축소되거나 지연되는 등 예산 문제로 인한 직접적 농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농민이 처한 시급한 현안들보다 정부 주력 사업을 우선시하는 모습은, 농특세가 2배 확대되고 농어촌상생협력기금 1조원이 채워진들 그것이 농업·농민을 위해 충실히 쓰일 수 있을지 우려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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