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업신문 사설) 이재명 대통령이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미달액 7000억 원을 정부 재정으로 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10년간 1조 원을 조성하기로 했던 상생기금이 목표의 30% 수준인 3000억 원에 그친 만큼, 정부가 약속을 지키겠다는 취지다. FTA 확대 과정에서 피해를 감내해 온 농어민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정부가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직접 메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것은 단순히 재원을 마련하는 차원을 넘어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만든 근본 취지를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2015년 한·중 FTA 비준 당시 여야정 합의로 도입됐다. 시장 개방으로 이익을 얻는 기업과 공공기관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출연해 FTA로 피해를 입는 농어촌과 이익을 공유하자는 것이 핵심 정신이었다.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상생의 가치를 제도화한 장치였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기업들의 참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목표액 1조 원 가운데 실제 조성액은 약 3000억 원에 그쳤고, 그마저도 상당 부분을 공공기관이 부담했다. 민간기업의 참여는 여전히 저조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부족한 7000억 원을 모두 대신 내는 것이 해답일까.
정부가 대신 기금을 채우는 순간 상생기금은 더 이상 '상생협력기금'이 아니다. 시장 개방의 수혜자가 부담해야 할 몫을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FTA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기업은 아무런 부담을 지지 않고, 그 책임을 정부가 떠안는다면 제도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더 큰 문제는 잘못된 선례를 남긴다는 점이다.
정부가 이번에 부족분을 모두 보전하면 앞으로 어느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출연하려 하겠는가. "어차피 부족하면 정부가 메워준다"는 인식이 자리 잡는 순간 기업의 참여 동기는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다. 상생협력기금은 사실상 정부 일반재정 사업으로 변질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면제받게 된다.
정부가 농어민을 지원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이견이 없다. 오히려 FTA로 인한 피해 보전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책임은 농업예산 확대나 FTA 피해보전제도 개선, 농어촌특별세의 목적에 맞는 사업 확대 등을 통해 이행해야 한다. 상생협력기금의 부족분을 정부 재정으로 단순 보전하는 방식은 정책적으로 가장 손쉬울지 몰라도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처방이다.
정부가 정말 상생협력기금을 살리고 싶다면 기업의 부담을 정부가 대신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세제 혜택 확대, ESG 평가 연계, 공공조달 인센티브, FTA 수혜기업의 참여 유도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자발성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했던 지난 10년을 반성해야 할 대상은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제도 설계이지, 상생의 원칙 자체가 아니다.
농어민 지원은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생협력기금은 시장 개방의 이익을 사회적으로 나누기 위해 만든 제도다. 정부가 대신 돈을 내는 순간 '상생'은 사라지고 '국고 지원'만 남는다. 농어촌을 돕겠다는 선의가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7000억 원을 대신 내는 정부가 아니라, 7000억 원을 함께 부담하도록 기업의 책임을 묻는 정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