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농산물 유통효율화를 위해 농산물도매시장 제도 개편에 나선 가운데 우리나라보다 먼저 도매시장 개혁을 단행한 일본 사례에 이목이 쏠린다.
농협 미래전략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일본 농산물도매시장 제도 개편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도매시장은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유통환경이 급변하며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 실제 청과물 기준 도매시장 거래 비중은 2003년 78.3%에서 2023년 50.5%로 감소했다.
일본도 비슷한 상황을 먼저 겪었다. 1960년대 이후 정시·정량·정가 중심의 대량구매를 요구하는 대형 소매점이 성장하면서 경매·입찰을 원칙으로 하는 도매시장이 시장 요구를 충족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일본 정부는 1971년과 1999년 단계적으로 예약형 상대매매(정가·수의매매)를 허용하고, 2018년에는 제삼자 판매 금지 규제 등을 풀었다.
일본은 규제를 완화하면서도 공공성 확보를 위해 도매시장이 합리적 가격 형성에 기여하도록 했다. 지난해 ‘식료시스템법’ 개정 사례가 대표적이다. 개정된 법은 도매시장 개설자에게 쌀·우유 등 지정 품목의 생산비와 인건비, 물류비 등을 반영한 비용지표 공개 의무를 부과했다. 이를 토대로 도매법인과 중도매인은 구매자에게 가격 인상 등의 배경을 설명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산지 조직화 수준이 낮고 중도매인의 경영여건이 영세해 구매 안정성보다 도매시장의 투명한 가격 형성 기능을 중시해왔다. 이에 보고서는 단순한 규제 완화보다 대표가격 형성 등 공공적 시장 플랫폼의 기능 강화가 더 적합하다고 분석했다.
정준호 농협 미래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은 규제 완화를 추진하려면 공공성 훼손 우려가 낮고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명확한 영역을 중심으로 단계적 전환을 도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예약형 정가·수의매매 활성화 논의에도 일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일본은 예약형 상대매매 확대 과정에서 산지의 공급 역량과 소비지의 실질 수요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면서 “우리나라도 우수 산지 조직이 예약형 물량을 도매시장에 안정적으로 출하하도록 유인책을 마련하고, 영세한 중도매인의 공동 구매·물류 촉진을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재효 기자 hyo@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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