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업은 전략안보산업”, “국가책임 농정”. 이재명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이지만 농산물 수급에 있어선 아직 적용이 요원한 모습이다. ‘생산이 넘칠 땐 무대책, 모자랄 땐 수입’ 식의 구태 수급정책이 콩에서 재현되면서 농심이 이반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장관 구윤철)와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는 지난달 13일 콩나물 재배용 콩 시장접근물량(저율관세할당, TRQ)을 당초 정해 놨던 1만7450톤에서 2만7450톤으로 1만톤 증량한다고 발표했다. 공급부족 전망에 따른 결정인데, 농민들과의 상의는커녕 사전 고지조차 없었던 일방적 발표였다.
특히 추가 TRQ물량 적용 기간인 8~12월엔 국산 수확·출하기(10~11월)가 물려 있어 농민들에게 더욱 직접적인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이에 정책 발표 직후부터 지금까지 농민단체들의 강도 높은 질타가 빗발치고 있다.
이번 TRQ 증량이 더 허탈한 건, 불과 석달 전 농식품부가 일반콩 생산감축 정책(정부수매량 6만→3만톤 조정)을 펴면서 농민들과 한차례 홍역을 치렀기 때문이다. 농식품부가 수년에 걸쳐 생산 확대를 유도해 온 작목임에도 재고가 불어나자 한순간에 농민들로부터 등을 돌린 것으로, 이 역시 아직까지 논란이 봉합되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생산이 넘치는 백태를 생산이 부족한 콩나물콩으로 전환시키려는 정책적 노력이 있었다면, 백태 생산감축과 콩나물콩 수입증량이 최소화되고 농민 반감도 덜했을 수 있다. 올해의 엇박자 콩 정책은 생산현장으로부터 근시안적·일차원적 수급정책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콩나물콩의 절대적 주산지인 제주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콩나물콩을 주작목으로 하는 조영재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의장은 “파종이 이제 끝나 가는데 불안해진 거다. 농민들이 모이면 서로 그(콩나물콩 수입) 얘기를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하며 “지금 수매가격으로도 생산비 상승을 감당하기 어려운데 수입까지 크게 는다니 여론 자체가 ‘농사 못 짓겠다’는 추세다. 가뭄으로 말라 죽는 콩밭들이 나오고 있는데 콩을 재파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지역 농업은 무·당근·양채류·메밀·보리 등 몇 가지 작목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 콩나물콩 역시 제주 도정이 재배품목 분산을 위해 육성해 온 주요 작목이다. 즉 콩나물콩에 눈에 띄는 재배 감소가 일어난다면 다른 품목들이 포화돼 도미노처럼 쓰러질 가능성이 큰 구조다.
이에 위성곤 제주도지사, 문대림 국회의원(제주시갑) 등 정치인들이 차례로 농식품부에 피해 대책 건의에 나서고 있다. △TRQ 물량 도입 시기 조정 △정부 수매단가 인상 같은 TRQ 증량 피해 완화 방안은 물론, 이참에 △밭콩을 논콩처럼 전략작물직불제에 편입시키고 △TRQ 공매 수익금 일부를 농가에 지원하는 등 제주 밭콩의 체질적 개선에도 주문을 덧붙였다.
문제의 핵심은 단연 기계적·일방적 농산물 수입 정책에 있다. 문대림 의원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인 제주 생산 농가의 의견 수렴 절차가 누락됐다”고 지적을 가했고, 농업계 안팎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달 24일 성명에서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수입으로 대응하고 가격이 하락하면 시장에 맡기는 방식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이런 정책은 단기적으론 물가를 조절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내 생산기반을 약화시키고 식량자급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며 계약재배·공공비축 확대, 공정가격 도입 등 농민단체의 목소리에 힘을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