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차 공공기관 이전 대상에 농협중앙회가 포함될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하며 농협 전반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공공기관이 아닌 전국 단위 농축협 연합체인 농협중앙회를 지방이전 대상에 올리는 데 대해 명분과 실익 측면에서 구성원들은 고개를 갸웃하는 분위기다. 농민 이익 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민간 협동조합 농협의 이전을 구성원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놓고 또다시 ‘관치’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협 구성원 합의 없는데…외부 유치 경쟁부터 가열=현재 정부 부처를 중심으로 국토교통부가 7∼8월 중 2차 공공기관 이전 방향을 제시하고, 9월 중 세부 리스트를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도 8일 전북 전주 혁신도시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하반기부터 2차 공공기관 이전 정책을 본격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농협중앙회가 2차 공공기관 이전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설이 공공연히 회자한다. 강원·경북·전북·전남광주 등 광역지방자치단체들이 민선 9기 출범과 함께 농협중앙회를 유치 목표 기관 상단에 올려놓은 점도 이전설 확산에 불을 붙이는 요인으로 보인다.
농협중앙회는 정부가 출자·설립한 공공기관이 아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된 농협과 수협 등 민간 협동조합 중앙회를 공공기관으로 간주해 이전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중순에는 ‘농협중앙회 및 농협경제지주→전남광주 나주’, ‘NH농협금융지주 및 계열사→부산’ 등 세부 이전 지역이 명시된 ‘지라시’가 한차례 돌며 농협 전체가 술렁이기도 했다.
국회에는 농협중앙회 이전을 골자로 한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돼 있다. 현행 농협법 114조는 중앙회 주사무소를 서울에 두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이를 다른 광역도로 하거나 중앙회 정관으로 정하도록 바꾸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윤준병(전북 정읍·고창)·이성윤(〃전주을) 의원이 주사무소 소재지를 전북으로 바꾸는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문금주(전남광주 고흥·보성·장흥·강진), 국민의힘 정희용(경북 고령·성주·칠곡)·조경태(부산 사하을) 의원은 주사무소를 정관에서 정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농민 상호부조 조직, 지방이전 명분·실익 ‘갸웃’=농협 내부에선 구성원의 의견수렴 없이 외부에서 이전설이 흘러나오는 데 우려와 불만이 커지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전국 농축협 1108곳이 농민 권익 증진과 사업 편의를 위해 출자해 설립한 연합회인데도 이해당사자와 논의 없이 이전설만 난무한다는 것이다.
농축협, 농협중앙회(경제·금융 지주 포함) 등 범농협 임직원 약 10만명은 지금도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 흩어져 일하고 있다. 일선 농축협에서는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일방적 지방이전 추진이 농협 전체 경쟁력과 농민 조합원 실익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예로 농협중앙회에서는 농축협 조합장 총회, 대의원회, 품목별 협의회 등 대면회의가 자주 개최된다. 농축산물 수급동향, 농업재해 대응 등 긴급 현안 발생 시 지원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도 수시로 열린다. 조합장들은 농협중앙회뿐 아니라 국회 등을 방문해 농촌 이해 증진 활동을 한다. 서울은 KTX(고속철도)·고속버스·항공 등을 활용해 전국 각지에서 접근이 쉽지만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이같은 농정활동에 투입될 유무형의 비용이 늘거나 아예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민경영 강원 삼척 원덕농협 조합장은 “조합장은 농민과 긴밀히 호흡하며 농촌 현장 목소리를 중앙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서울은 사통팔달이니 당일에 다녀오지만 다른 지역은 최소 1박2일이 소요될 것”이라며 “국가 균형발전도 중요하지만 대부분 소멸지역에 있는 농축협들의 이익 대변을 위해 설립한 농협중앙회에 균형발전의 역할까지 맡기는 건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광역지자체 중 ‘농촌’을 품지 않은 지역이 없다는 점에선 중앙회 이전 논의 자체가 농협 내 지역간 갈등을 초래할 뇌관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전 비용도 문제다.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직원 1000명 수준의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데 평균 5000억원이 소요됐다.
도정선 충북 동청주농협 조합장은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많은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점에서 농협은 그래도 어떻게 하면 농민 지원을 더 늘릴지 고민하고 있다”며 “이 시점에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농협중앙회 지방이전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그 효용이 어디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말 이전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졸속과 정치논리로 하는 것은 맞지 않고 농민들과 조합장들의 의견을 물어 현실에 맞는 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국금융산업노조 NH농협지부도 ▲사업 비효율성 ▲농협 설립 목적 위배 ▲직원 주거이전 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일방적 지방이전에 반발하고 있다. 최대 농축산물 소비지이자 가격 형성 중심지인 서울을 벗어나면 농협의 농산물 판매·유통 기능에 타격이 생기고, 농협 재무구조 악화로 농민 지원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김해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