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어제까지 이쪽은 멀쩡했는데 오늘 열어보니 데였네.”
10일 오전 11시 충북 영동군 상촌면 고이농장. 농장주 고미숙씨(60)가 봉지를 벗겨 샤인머스캣 송이를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날까지 햇볕데임(일소) 피해가 없어 돌을 세워 표시해둔 구역이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이 구역 포도송이에서도 포도알이 갈색으로 변하고 쪼그라들었다. 전형적인 햇볕데임 증상이다.
비가림포도농가인 고씨는 샤인머스캣을 2314㎡(700평), ‘캠벨얼리’ 포도를 5619㎡(1700평) 규모로 재배한다. 그는 6월30일 봉지를 씌운 뒤 이달 5일 햇볕데임 증상을 처음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포도는 봉지를 한번 씌우면 수확 때까지 다시 열지 않는다. 하지만 피해가 없던 송이에서도 증상이 잇따르자 고씨는 이미 씌운 봉지를 벗겨 상한 포도알을 솎아낸 뒤 다시 씌우는 작업을 반복 중이다.
고씨는 “봉지 씌우기를 마치면 힘든 농사는 거의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이라며 “조만간 산지유통인이 과수원에 오기로 했는데 이런 상태를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늦장마에 이어 무더위가 한반도를 덮치면서 과수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배와 사과도 고온이 지속된다면 햇볕데임과 열매터짐(열과) 피해가 확산할 우려가 크다는 게 산지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이다.
전남광주 나주 배농가 김준씨는 “다행히 이달 셋째주까지는 큰 피해가 없었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며 “배 역시 봉지를 씌워 키우다보니 수확기가 돼서야 햇볕데임 피해를 확인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몇년 사이 폭염이 잦아지면서 미세살수나 관수만으로는 대응에 한계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달 넷째주가 과수 생육의 고비라는 목소리도 있다. 경북 의성 사과농가 박재만씨는 “사과는 과피가 비교적 두꺼워 아직은 과수원에서 햇볕데임이 하나씩 보이는 정도”라면서도 “폭염이 계속된다면 20일 이후 햇볕데임·열매터짐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당국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농촌진흥청은 13일 햇볕데임·열매터짐 예방 요령을 전국 과수농가에 알리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햇볕데임을 줄이기 위해서는 미세살수장치·차광망을 활용해 과실 표면 온도를 낮추고 강한 직사광선을 차단할 것을 권장했다.
김윤경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과수기초기반과장은 “열매터짐이 우려되는 과수원은 집중호우 뒤 배수로를 정비하고 물을 한꺼번에 주기보다 여러차례 나눠 공급해 토양 내 수분이 급격히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해달라”고 당부했다.
고씨는 “햇볕데임이 발생한 뒤 과원에 선풍기를 설치해 환기를 시작했다”면서 “비가림시설은 차광망 설치도 쉽지 않은 만큼 순환팬과 환풍·관수 시설 같은 시설하우스 맞춤형 폭염 대응 장비 지원이 확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동=정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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