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정책실장 “농특회계 등 활용 충분히 가능”
통상개방 수혜기업 분담 강조…“농민단체와 피해대책 협의하라”
(한국농업신문=박현욱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자유무역협정(FTA) 등 시장개방으로 피해를 본 농업 분야에 대한 정부 책임을 강조하며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부족분을 재정으로 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통상 확대의 혜택을 보는 수출기업도 농업 피해를 분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해 향후 무역이득공유제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열린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조성 실적을 점검하며 “정부가 농민들에게 1조원 정도를 보전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지키지 못했다면 정부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FTA로 이익을 얻는 기업 등의 자발적 출연을 통해 농어업·농어촌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당초 목표액인 1조원 가운데 약 30%만 조성돼 약 7000억원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됐다.
이에 이 대통령은 “정부의 신뢰 문제”라며 “세수 상황도 괜찮은 편이니 부족한 7000억원 정도는 정부가 대신 책임지는 방법을 강구해 보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농어촌특별세 세수 증가분과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 등을 활용하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김 실장은 “농특회계에서 늘어난 부분을 활용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며 재정 보전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발언은 자발적 출연에 의존해 온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조성 방식의 한계를 정부가 인정하고, 재정 투입이나 기업의 의무 분담 등 보다 강제력 있는 제도로 전환할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특히 통상개방으로 이익을 얻는 산업과 피해를 보는 산업 사이에 책임을 나누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 질서를 바꾸면서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고 손해를 보는 집단이 있다”며 “이익을 보는 집단이 손해를 보는 집단에 일정 부분 책임을 지면 이해관계 조정도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저항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출액의 일정 비율이나 수출 이익의 일부를 부담하게 하는 식으로 확실히 보장했어야 했다”며 기업의 선의에 기대는 자발적 출연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향후 CPTPP 등 추가 시장개방 논의에서도 농업 피해대책을 협상 이후의 보완책이 아닌 통상정책의 전제조건으로 다뤄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동안 정부는 시장개방 때마다 농업 지원대책을 약속했지만, 농업계에서는 약속한 재원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고 생산 기반의 붕괴까지 보상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이어져 왔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도 “농업인들이 개방 문제에 민감한 것은 정부가 지원을 약속해 놓고 이를 지키지 못한 경험이 누적됐기 때문”이라며 “생산 기반 자체가 흔들리면 복구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통상협정을 추진할 때 농민단체와 피해대책을 사전에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수출시장을 늘려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쪽이 없어야 한다”며 “피해가 있다면 그만큼 보전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보전할지 농민단체들과 진지하게 협의하라”며 “대안과 대책을 함께 논의해 실제 필요한 방안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상생협력기금 부족분 7000억원의 재정 보전을 실제 예산에 반영할지, 수출기업의 분담을 의무화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농특회계 활용이 거론됐지만 기존 농업 예산을 기금 보전에 돌릴 경우 다른 농업사업이 축소될 수 있어 별도의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 농식품부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농업수입안정보험 대상 품목 확대와 가격안정제 도입, 필수 농자재 가격 상승 대응방안 마련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농림위성을 활용한 수급 예측, 도매시장법인 평가 강화, 온라인도매시장 산지 직거래 확대, 보급형 AI 스마트팜 개발 등도 하반기 주요 과제로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