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최근 농협개혁 정국에서 함께 제기되는 주장 중 하나가 ‘지역농협 간 합병을 통한 규모화 촉진 및 경쟁력 강화’다.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경쟁력’을 잃은 농촌 지역농협 간 통폐합으로 규모의 경제(규모를 키워 장기적인 비용을 줄이는 방향의 경제)를 실현하고, 그리하여 농민조합원을 위한 편익을 늘리자는 취지로 나온 주장이다.
농협중앙회(회장 강호동)는 최근 농협개혁위원회(위원장 이광범)가 건의한 개혁과제 중 하나인 ‘조합 사업 규모화를 위한 지역농협 간 합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분위기다.
최근 농협중앙회는 ‘합병 기본자금 지원 기준’의 개편을 통해, 기존에 600억원이었던 3개 지역농협 합병 시 기본자금 지원액을 1000억원으로, 700억원이었던 4개 지역농협 합병 시 지원액을 1500억원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2개 지역농협 합병 시 기존대로 500억원 지원).
이와 별개로,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 간 자율합병을 촉진시킬 목적으로 특별자금 지원도 늘리기로 했다. 기존에 2년간 최대 200억원 한도로 지원한 특별자금을 3년간 최대 300억원 한도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합병에 참여하는 조합장(정확히는 합병으로 사라지는 지역농협의 조합장)에게 지급하는 기본공로금 액수도 기존 8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늘리며, 지역농협 간 합병 실패 시 재시도를 위한 재투표 비용 지원도 기존 1회에서 2회로 늘리고자 한다.
경영위기 극복 위한 상생안으로 합병 선택하는 지역농협들
농협중앙회 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1989년 이래 지난해 말까지 총 437건의 지역농협 간 합병이 이뤄졌다. 특히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 국내 경제위기가 심화할 시 그에 비례하듯 지역농협 다수의 경영여건이 악화했고, 이후 경제상황 안정 및 개별 지역농협 경영역량 향상 등으로 그나마 합병 건수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농촌 인구 감소 심화 등에 따른 농촌 농협의 경영난으로, 현재까지도 지역농협 간 합병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 10일엔 경북 경주시 양남농협·동경주농협 간 합병으로 경주 동부지역 일대를 관할하는 경주월성농협(조합장 백민석)이 새로이 출범했다. 경주월성농협 출범 사례를 통해, 일반적으로 지역농협 간 합병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살펴보자.
지난해 10월, 수년간에 걸쳐 경영난을 겪었던 동경주농협은 농협중앙회 구조개선본부로부터 합병 권고를 받았다. 동경주농협 이사회는 양남농협을 우선 대상자로 선정해 합병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양남농협·동경주농협 양측은 지난해 10월 31일 합병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2차에 걸친 합병 관련 실무협의회를 가졌다. 지난해 12월 1일, 쌍방은 합병할 농협의 명칭을 ‘경주월성농협’으로 확정지으며 합병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조합장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 해도 양대 조합 소속 조합원 다수의 동의가 없으면 합병이 불가능하다. 지난해 12월 27일, 양남농협과 동경주농협은 동시에 조합 합병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양남농협에선 전체 조합원의 80.18%가 투표에 참여해 87.99%가 합병에 찬성했으며, 동경주농협에선 전체 조합원의 73.55%가 투표에 참여해 74.99%가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조합원 다수의 동의도 얻었으니 이후 과정은 대체로 순조로운 편이었다. 올해 5월 22일 동경주농협은 재산 심사를 완료했고, 지난달 23일 농식품부는 양 농협 간 합병을 승인했다. 지난 7일 동경주농협은 해산 등기를, 양남농협은 변경 등기를 처리하며 합병을 위한 전 과정을 마쳤다.
경주월성농협의 한 조합원(기존 양남농협 조합원)은 “비단 동경주농협·양남농협뿐 아니라 전국 다수 농촌지역 농협이 경제사업의 어려움과 부동산 경기 악화 등 여러 요인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번에 통합된 동경주농협 역시 원래 존재했던 감포농협과 양북농협이 (경영난으로 인해 1999년에) 통합하면서 들어선 곳이었다”고 언급했다.
경영의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농촌지역 소규모 농협들은 합병으로 새로운 살길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합병 뒤에도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사업상의 어려움을 겪어온 합병 농협은 또 다른 지역농협과의 합병이란 카드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는 셈이다.
조합원의 민주적 의사결정 참여 및 소멸위기 대응 방안 놓쳐선 안 돼
지역 농축협 간 합병을 통한 규모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사실상 시대적 대세가 된 분위기다. 지역 농축협들은 주로 △영세 농축협의 규모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 △생산자본에 대한 중복투자 방지로 효율성 증대 △취급 농산물의 다양성 확보를 통한 판매역량 강화 △조합원 수 증대 통한 구매사업 활성화 기대 △합병을 통한 조합원 교육지원 역량 강화 등을 기대하며 합병에 나선다는 게 농협 측의 진단이다.
실제로 합병 농축협은 당기순이익 등의 지표에서 비합병 농축협 대비 양호한 통계를 보이는 양상이 일반적이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2024년 말 전국 각지 농촌형 합병 농축협(농촌지역 소재 합병 농축협)의 당기순이익 평균은 약 10억5700만원이었으며, 농촌형 비합병 농축협의 당기순이익 평균은 약 7억2400만원이었다.
전체 경제사업량 역시 합병 농축협이 비합병 농축협에 비해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말 기준 전국 각지 농촌형 합병 농축협의 경제사업량 총량은 약 573억4900만원, 비합병 농축협은 약 402억7600만원이었다. 다만 조합원 1인당 경제사업량 평균 규모는 농촌형 합병 농축협 조합원 1인당 약 2410만원, 비합병 농축협 조합원 1인당 약 3120만원으로 비합병 농축협의 1인당 경제사업량이 합병 농축협의 그것보다 높게 나타났다. 합병에 따른 경제사업 총량은 늘어났으나, 단순 규모화를 넘어선 실질적 경제사업 활성화 단계로 나아갔다기엔 부족한 상황인 셈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비합병 농축협은 합병 농축협에 비해 당기순이익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 1인당 교육지원사업비 지원 규모 측면에선 오히려 우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으로 농촌형·준농촌형 비합병 농축협은 합병 농축협에 비해 각각 13만원, 16만원의 조합원 1인당 교육지원사업비를 추가 편성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농촌형 합병 농축협 : 47만원, 농촌형 비합병 농축협 : 60만원, 준농촌형 합병 농축협 : 51만원, 준농촌형 비합병 농축협 : 67만원).
다시 말해, 합병 농축협의 당기순이익이 비합병 농축협에 비해 높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합병 후 조합원 대상 교육지원사업비는 전반적으로 감소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따라서 합병 후 개별 조합원 대상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밖에도 농축협 합병을 급격하게 추진할 시 우려되는 부작용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조직 규모화에 따른 조합원 실익 증대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이는 상기한 교육지원사업비 평균 지원 규모 감소 등에서 드러난다.
이와 함께 △합병으로 인한 농축협 경영개선 효과 불확실 △합병 농협 조합원 및 직원 간 이질성 증가에 따른 융합의 어려움 △지역소멸 문제 대응을 위한 농축협의 역할 위축 등이 우려점으로 지적된다. 지역농협 합병에 따른 조합원 의사결정 참여 공간 축소(합병에 따른 이·감사 및 대의원 수 감소, 대의원회 또는 총회 시 조합원 목소리가 묻힐 가능성 증가 등) 및 변두리 지역(합병 농축협 본점에서 거리가 상대적으로 더 먼 지역)의 경제사업(하나로마트·농자재매장·주유소 운영 등)이 약화하거나 아예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지역 농축협 간 합병이 ‘대세’임을 부인할 순 없더라도, 최소한 이상과 같은 부작용의 방지책 및 명확한 목적성을 갖고 합병을 추진하는 게 맞다는 지적이 농협 내외에서 제기된다. 합병 여부 결정 과정에서 기존 지역농협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게 기본임은 당연하다. 또한, 규모가 작고 경영 상황이 녹록지는 않아도 어떻게든 조합원들의 이익 증진에 기여하는 ‘강소농협’의 지속 가능한 경영을 지원할 필요성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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