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민은 무엇으로 버텨야 합니까](https://cdn.ikpnews.net/news/thumbnail/202607/70987_51132_481_v150.jpg)
요즘 농촌은 참 조용합니다. 보통 7월이 되면 어디서든 만나 바쁘게 수박을 출하하고 고생한 회포를 풀었습니다. 농협 앞에만 가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5일마다 돌아오는 진천·덕산 장날이면 장에서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농사 이야기를 하고, 국밥에 막걸리도 걸치며 한숨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릅니다. 어쩌다 모임, 회의를 가도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대화도 줄었습니다. 농촌이 늙어간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올해도 멜론을 키우고 단호박을 심었습니다. 비를 걱정하고 폭염을 견디며 작물을 돌봐왔지만, 출하 철이 다가올수록 기대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과연 얼마를 받아야 하나, 받을 수 있을까. 며칠 전 이웃농가의 애호박, 오이가격, 양배추 농산물 가격을 보며 한참 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애써 키운 농산물이 박스값도 건지지 못하는 가격에 거래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통장에 입금된 정산 내역을 받아들 때의 허탈함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몇 달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흘린 땀의 값이 고작 이것인가 하는 마음. 더 힘든 것은 가격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한다는 무력감, 아무리 애를 써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점점 말이 없어집니다.
예전에는 화라도 냈습니다. 농민대회에 나가고, 기자회견도 열면서 억울하다고 소리도 지르고 세상 탓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마저 줄어들었습니다. 화를 내도 달라지는 것이 없고, 푸념을 해도 해결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너무 오래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농촌은 더욱 고요합니다. 그 고요함은 평화로워서가 아니라 지쳐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는 지난 7일 농민대회가 열렸습니다. 전국의 농민들이 모여 현실을 이야기하고 목소리를 냈지만,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생산비는 계속 오르고 농산물 가격은 여전히 불안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지친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저에게는 다행히 함께 버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여성농민 언니들입니다. 모여서 밥 한 끼를 나누고, 농사 이야기를 하고, 속상했던 일들을 털어놓으며 서로를 위로합니다. 누군가는 씨앗을 나누고, 누군가는 판로 정보를 알려주고, 누군가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큰 해결책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라는 마음 하나가 다시 밭으로 나갈 힘이 되곤 합니다. 우리 여성농민들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일까. 세상을 단번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서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줄 수는 있습니다. 지금 농촌에 가장 필요한 것은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농민은 늘 버텨왔습니다. 가뭄도 버텼고 폭우도 버텼고 병해충도 버텼습니다. 토종 텃밭에 오이와 가지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을 보면 또 기운이 납니다. 수확의 기쁨은 여전히 농부를 설레게 합니다. 계절이 주는 선물을 거두며 우리는 다시 내년 농사를 준비합니다.
오늘도 바노들 농장에서는 멜론이 익어가고 단호박이 자라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여름 풍경이지만 그 안에는 가격 걱정과 생계 걱정이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농민을 버티게 하는 것은 높은 농산물 가격도, 좋은 정책도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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