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기능올림픽④ 언 손 불며 따낸 2급 기능사 자격증](https://cdn.ikpnews.net/news/thumbnail/202607/70975_51112_1829_v150.jpg)
공업학교 신입생들이 기계‧전기‧금형 등의 본격적인 전공과목을 선택하기 전, 1학년 때 거치는 강도 높은 기초 공통 실습 과정을 이른바 ‘아베베(ABB) 과정’이라 칭한다고 했다. 쇠를 자르고 깎는 수작업을 통해 인내심과 기본기를 다지는 기본 훈련이다. 그런데 강철 연장인 ‘줄’을 맨손으로 쥐고서 쇠붙이를 갈아내는 그 과정은 보통의 인내심으로는 겪어내기 어려운 훈련이었다고 한독직업학교 출신 김을곤씨는 회고한다.
“생각해 보세요. 연탄 크기의 쇳덩어리를 주면서 밑변의 지름과 높이가 각각 5센티미터인 쬐끄만 원통으로 갈아내야 한다니 엄두가 나겠어요? 며칠 하다 보니까 손에 물집이 잡혀서 더 이상 줄을 잡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물론 그 작업도 단계가 있어요. 처음엔 줄을 잡는 방법에서부터 미는 요령을 익혀나가고, 그런 다음에 조금씩 차근차근 갈아내는데…그 작업 과정 하나하나를 매일 선생님이 평가하고 채점을 해요.”
더구나 그 시절엔 난방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겨울철이면 추위를 견뎌내는 일도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그러니 실습 시간이면 여기저기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아이고 손 시려라. 아무리 남쪽 나라 부산이라 캐도 겨울은 겨울인데 난방도 안 해주고….
-손 시린 건 둘째 문제고, 내는 물집이 두 번이나 생겼다가 터져삤다 아이가. 우리가 징역 살러 온 죄수들도 아인데, 맨손으로 이걸 우째 다 가노?
그때 선생님이 다가온다.
-이눔 자식들, 뭘 그렇게 구시렁대나? 실습 시간엔 정신 통일, 몇 번을 말했나! 김을곤, 넌 줄질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예? 선생님께 배운 대로 이렇게….
-내가 언제 그렇게 가르쳤나? 몸을 움직여서 줄질을 하라고 했는데 왜 손만 움직거리는 거야! 다시 잡아봐. 자, 그렇게 오른손으로는 자루를 잡고, 왼손으로는 줄 끝을 잡는데, 오른팔은 가슴에 딱 붙이란 말이야! 손만 왔다갔다 하지 말고 몸 전체를 움직여서 줄질을 하라구!
겨울철, 난방도 안 되는 실습실에서 맨손으로 줄을 잡고 쇠붙이를 갈아내는 작업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더라고 했다. 그렇다면 장갑을 끼고 하면 더 낫지 않을까?
“장갑을 끼고 하면 손도 덜 시리고 물집도 안 잡힐 텐데 절대 못 끼게 해요. 장갑을 끼면 무엇보다 감각이 둔해지잖아요. 기능은 감각이거든요. 주부들이 요리할 때 손끝에서 맛이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기능인들도 마찬가집니다. 손끝에서 재주가 우러나고 거기서 아름다운 작품이 나오는 것이에요. 장갑을 낀다고요? 그런 호강스러운 조건에서는 작품이 안 나와요.”
김을곤씨는 취재 수첩을 펴놓고서 ‘경청하는’ 나를 대상으로, 왕년에 한독직업학교의 실습 교사가 학생들에게 지겹게 했음직한 ‘잔소리’를 한참이나 더 늘어놓았다.
배우는 과정이 이렇듯 힘들다 보니 1학년 때의 기초 실습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고 자퇴하는 학생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합천 출신의 김을곤 학생은 실습 과정을 무난히 마치고 2학년 때에는 선반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해서 본격적인 기술 연마에 들어갔다는데, 그는 새롭게 무엇인가를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전혀 힘든 줄을 몰랐다고 한다.
“선반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 적성에 딱 맞았던 것 같아요. 남들은 고된 실습 과정을 무척 힘들어했는데, 저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그 과정이 재미있고 보람차고… 하여튼 좋았어요. 어떤 일이든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딱 그랬던 것 같아요. 좀 거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요, 하하하.”
적성에 맞는 일을 즐기면서 했기 때문에 훗날 그 분야에서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었다는 얘기일 터, 그의 어투에서 역경을 딛고 목표한 바를 성취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김을곤은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앞서서, 2학년 때 이미 선반 2급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입학할 때 세웠던 그의 계획 중 1단계는 무사히 달성한 셈이었다. 앞서 소개했던 기능올림픽 양복 분야 금메달리스트 이정구씨의 경우 기술자의 잔심부름부터 시작해야 하는 도제식으로 기능을 전수했다면, 그래도 김을곤씨는 일정한 체제를 갖춘 교육기관을 통해 양성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할 것이다.
어느 날 한 동급생 친구가 김을곤에게 말했다.
-이번에 전국 기능경기대회에 나갈 부산 대표를 뽑는다는데 우리도 한 번 도전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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