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농정신문 유승현 기자]
커피 매출 뛰어넘은 ‘알밤’
논산천안고속도로의 정안알밤휴게소는 호남권과 수도권을 잇는 주요 고속버스 환승 거점이다. 월평균 7000여대의 고속버스가 오가는 데다 많은 이용객이 찾는 만큼 지역을 알릴 수 있는 홍보 효과도 크다.
이같은 잠재력에 주목한 공주시는 2016년 천안논산고속도로㈜와 협의를 거쳐 기존 ‘정안휴게소’ 명칭을 ‘정안알밤휴게소’로 변경했다. 이후 휴게소 운영사인 키다리식품과 함께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상품 개발과 판매 확대에 나서며 지역 농산물 판로 확대의 거점으로 육성하고 있다.
휴게소 명칭 변경을 위해서는 재정고속도로의 경우 한국도로공사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 민자고속도로는 해당 운영사와 협의가 필요하다. 공주시는 명칭 변경 당시 이정표와 폴사인 등 안내시설 교체 비용 약 4000만원을 부담했다.
공주시는 휴게소 운영사와 농가를 연결해 지역 농산물 공급을 확대하고, ‘정안알밤’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공주 알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정희 공주시 농식품유통과 농축산유통팀장은 “휴게소 명칭에 ‘정안알밤’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전국적인 브랜드 홍보 효과를 낸다.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서 공주 알밤 전체의 인지도와 소비 확대라는 파급효과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명칭 변경은 단순한 간판 교체에 그치지 않았다. 정안알밤휴게소(순천방향) 로컬푸드 매장 매출은 명칭 변경 3년 뒤인 2019년 약 1억2500만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후에도 증가세를 이어가 2023년 약 2억1700만원, 2024년 약 3억5900만원, 지난해에는 약 10억7900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순천방향 로컬푸드 매장 기준으로, 천안방향 매장 매출까지 합하면 전체 판매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정안알밤휴게소(순천방향)에서는 알밤 관련 매출이 휴게소 대표 인기 상품인 커피류를 넘어서는 성과도 나타났다. 2024년 한 해 동안 로컬푸드 매장을 포함한 휴게소 내 밤 관련 상품 총매출은 약 50억원을 기록해 커피류 매출 약 41억원을 웃돌았다.
물론 코로나19 이후 국내 여행 수요 증가와 휴게소 시설 개선, 아울렛 매장 도입 등 여러 요인이 매출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휴게소 측은 ‘정안알밤’이라는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밤빵 등 가공식품 판매가 늘었고, 이를 계기로 생밤을 비롯한 지역 농산물 구매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안알밤휴게소에서는 공주 알밤을 활용한 밤빵과 군밤, 쌀밤빵 등 가공식품은 물론 30여 농가가 생산한 100여 종의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오는 23일에는 고속버스 환승장과 맞닿은 공간에 ‘알밤거리’를 조성해 공주 알밤으로 만든 가공품 판매를 확대할 계획이다. 일반 휴게소의 로컬푸드 매장이 이용객 이동 동선과 떨어진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정안알밤휴게소는 환승객들이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도록 판매 공간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슈퍼마켓 형태의 편의시설 내부에도 별도의 로컬푸드 판매 공간을 마련해 공주 알밤과 지역 농산물의 접근성을 높였다.
민순기 정안알밤휴게소(순천방향) 소장은 “지역과 상생하기 위해 시작한 노력이 결국 휴게소 경쟁력과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며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 개발과 브랜드 마케팅은 다른 휴게소에서도 참고하는 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단골’이 찾는 남성주참외휴게소
중부내륙고속도로의 남성주참외휴게소는 지역 특산물 휴게소의 또 다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성주군은 2015년 기존 ‘남성주휴게소’ 명칭에 지역 대표 농산물인 ‘참외’를 더해 ‘남성주참외휴게소’로 변경했다. 공주시의 정안알밤휴게소 사례와 마찬가지로 고속도로 운영사와 협의를 거쳐 명칭을 바꿨으며, 간판 교체 등 관련 비용 일부는 성주군이 부담했다. 휴게소 내에는 성주 참외 캐릭터 ‘참별이’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지역 특산물 홍보에도 적극 나섰다.
명칭 변경 효과는 로컬푸드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남성주참외휴게소 양방향 로컬푸드 직매장 매출은 2015년 약 6000만원 수준에서 명칭 변경 3년 뒤인 2018년 약 1억120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가 2019년 약 4억4300만원, 지난해에는 약 5억7600만원을 기록했다.
성주군에서 참외는 지역 경제를 대표하는 핵심 농산물이다. 2025년 기준 성주 전체 1만여 농가 가운데 약 3700여 농가가 참외 농사를 짓고 있으며, 전국 참외 생산량의 70% 이상이 성주에서 생산된다. 연간 생산량은 약 18만톤에 달한다.
정안알밤휴게소가 고속버스 환승 거점이라는 높은 유동인구를 기반으로 지역 특산물을 알렸다면, 남성주참외휴게소는 주요 환승 시설이 없는 상황에서도 산지 직송 참외를 찾는 소비자와 입소문을 통해 경쟁력을 키웠다.
특히 참외 출하가 본격화되는 4~5월이면 대구·경북·경남권을 오가는 물류 배송 기사들이 휴게소에 들러 성주 참외를 구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히 쉬어가는 공간을 넘어 산지 농산물을 구매하는 판매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성주군은 휴게소를 지역 홍보와 판로 확대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남성주참외휴게소 로컬푸드 직매장은 한국후계농업경영인성주군연합회가 성주군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특히 한농연 성주군 용암면회는 2024년부터 휴게소에서 ‘명품 성주용암참외 무료 시식회’를 개최하며 성주의 대표 축제인 참외&생명문화축제를 알리는 사전 홍보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김현우 성주군 농정과 농산물유통팀장은 “성주하면 참외라는 브랜드가 자리 잡았고, 휴게소는 소비자들이 언제든 성주 참외를 접하고 구매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 됐다”며 “휴게소 명칭 변경은 지역 농가 소득 확대를 위해 당연한 선택이었고, 앞으로도 지역 농산물 판로 확보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름값 덕에 ‘제값’ 받는다
지역 특산물 명칭을 내건 휴게소는 정말 농가에 도움이 될까. 지역 특산물 휴게소의 성과를 단순히 매출 증가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휴게소 명칭 변경이 지역 농산물 브랜드 가치 향상과 농가 판로 확대, 소득 증대로 얼마나 이어졌는지다.
현장에서 만난 농가들은 “브랜드화를 통한 파급 효과는 분명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휴게소 특성을 반영한 제품 개발, 다양한 농가가 참여할 수 있는 판매 구조 마련 등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제시했다.
공주시 반포면 마티고개에서 밤 농사를 짓는 노희섭씨는 국내 밤 생산 농가 1세대로 꼽힌다. 1996년 체험농장이 생소하던 시절부터 자신의 밤 재배지에서 알밤 줍기 체험을 시작했고, 현재는 매년 초 10월 체험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지역 대표 농장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 밤 품종 보급과 체험문화 확산, 공주 밤 축제 활성화 등 공주 알밤 브랜드 성장 과정에도 꾸준히 참여해왔다.
노씨는 정안알밤휴게소 명칭 변경이 지역 밤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그는 “모든 농가가 휴게소에 직접 물량을 공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안·공주=알밤’이라는 이미지가 소비자들에게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며 “일부러 정안알밤휴게소에 들러 밤을 구매하는 소비자도 생겼고, 이런 브랜드 인지도 덕분에 지역 농가들이 다른 지역보다 제값을 받고 판매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노씨는 앞으로 생밤과 가공식품을 넘어 새로운 시장 개척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밤가루를 활용하면 치킨 파우더나 밤스프 등 휴게소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간편식으로 확장할 수 있다”며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제품 개발이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친환경 농가 플랫폼으로 활용해야”
성주군 선남면에서 친환경 참외 농사를 짓는 이재동씨는 27년째 참외 농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20여년 전부터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이어가기 위해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했다. 친환경 농가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일반 재배 방식보다 생산 비용이 높아 농산물의 가치를 알아주는 소비자를 만나는 일이다.
이씨는 “남성주참외휴게소를 통해 성주 참외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며 “지역 전체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고 소비가 확대된다면 농가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휴게소가 더 많은 농가에게 새로운 판로가 되기 위해서는 참여 구조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 남성주참외휴게소 직판장은 특정 생산자단체가 1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다. 이씨는 “출하 농가를 확대하고 다양한 생산자단체가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다면 지역 농가의 판로 확보에도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친환경농업 확대와 탄소 저감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지역 특산물 휴게소가 친환경 농가의 판로로 활용된다면 다양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지속가능한 농산물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속도로 위 잠시 쉬어가는 공간에 불과했던 휴게소가 이제는 지역의 얼굴이자 농민들의 정성이 담긴 농산물을 만나는 ‘상생의 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올여름 여행길, 지역 특산물 이름을 내건 휴게소에 잠시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서 만나는 지역 농산물 한 봉지는 단순한 구매를 넘어 지역 브랜드를 키우고 농가의 판로를 넓히는 작은 응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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