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업신문=김채은 기자) 최근 소나무재선충병이 영남권을 넘어 수도권과 충남 서해안까지 확산되면서 전국적인 산림재난으로 번지고 있다. 피해 규모도 해마다 증가세를 이어가며 산림 생태계는 물론 산림경영과 지역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때 일부 지역에 국한됐던 재선충병이 기후변화와 인위적 확산 요인이 맞물리면서 전국적인 방제 체계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2022년 38만그루였던 피해목은 올해 177만그루로 4년 만에 4배 이상 증가했고, 최근 5년간 연평균 피해 증가율은 91.4%에 달한다. 산림청은 최근의 확산 양상을 단순한 병해충 증가가 아닌 기후변화가 촉발한 ‘3차 대발생’로 진단하며 기존 발생목 제거 중심의 방제에서 국가 주도의 예방·예찰 체계로 방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일단 감염되면 수분과 양분의 이동이 차단돼 나무가 말라 죽으며, 현재까지 감염목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어 조기 예찰과 신속한 방제가 유일한 대응책으로 꼽힌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매개충의 활동 기간이 길어지고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피해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 산림청의 분석이다.
영남권 넘어 경기·충남까지…확산 양상 달라졌다
올해 재선충병의 가장 큰 특징은 피해지역의 변화다. 과거에는 경북과 경남 등 영남권을 중심으로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경기와 충남 등 중부권으로 확산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기지역 피해목은 지난해 8만6000그루에서 올해 11만7000그루로 3만1000그루 증가했다. 충남은 같은 기간 5000그루에서 14만그루로 급증하며 증가폭이 13만5000그루에 달했다. 이는 기존 발생지역을 넘어 새로운 권역으로 재선충병이 빠르게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산림청은 이 같은 피해 양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별 맞춤형 방제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발생이 적은 청정·경미지역은 방제 역량을 집중해 재선충병을 조기에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피해가 심각한 지역은 감염목 제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수종전환을 병행하는 등 근본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는 기존처럼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제방식을 적용하기보다 지역별 피해 수준과 산림 여건을 고려한 차등 전략으로 방제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기후변화, 재선충병 확산 부추겨”
산림청은 최근 재선충병의 급격한 확산 배경으로 기후변화를 가장 먼저 지목했다. 겨울철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매개충의 월동 생존율은 높아졌고, 반대로 소나무는 고온과 이상기후로 생육환경이 악화돼 병해에 대한 저항성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피해 증가 속도를 방제 예산과 인력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재선충병 확산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로 산림청이 분석한 재선충병 발생위험도(MB지수)는 2020년 이후 꾸준히 상승했고, 2023년부터는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기온이 오를수록 매개충의 활동 기간이 길어지고 번식에도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산림청은 기후변화에 따른 매개충 활동 증가와 높은 재생산지수가 맞물리면서 앞으로도 재선충병 위험이 계속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처럼 발생지역을 중심으로 대응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국가 차원의 예찰과 예방 중심 방제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사목만 베면 끝”…현장의 가장 큰 오해
일반인들은 재선충병이 발생하면 고사목만 제거하면 방제가 끝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방제는 재선충을 옮기는 매개충의 생활사를 고려해 연중 이어지는 복합적인 작업이다.
매개충이 나무 내부에서 월동하는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는 감염목을 벌채한 뒤 파쇄하거나 훈증 처리해 재선충과 매개충을 함께 제거한다. 반대로 매개충이 우화하는 5월부터 9월까지는 항공방제를 실시해 매개충 개체수를 줄이고 추가 확산을 차단한다. 또 동절기인 11월부터 3월에는 건강한 소나무에 예방나무주사를 실시해 감염을 사전에 막는다. 즉, 감염목 제거는 방제 과정의 일부일 뿐이며 계절별로 서로 다른 방제기법이 함께 이뤄져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산림청의 설명이다.
증상 나타날 땐 늦었다…‘조기 신고’ 핵심
재선충병이 다른 산림 병해보다 까다로운 이유는 감염 초기에는 외관상 이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감염목은 당해 연도에는 잎의 변색이나 시들음 없이 정상적으로 보이다가 이듬해에야 붉게 변하거나 갈변하는 ‘비병징 감염목’ 형태를 보인다. 이 기간 동안에는 매개충이 건강한 나무로 재선충을 옮길 수 있어 피해가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 결국 치료보다 조기 발견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림청은 의심목을 발견하면 스마트산림재난앱 등을 통해 산림청 또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초기 대응이다.
불법 이동이 만든 새로운 발생지
재선충병 확산에는 사람의 부주의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산림청에 따르면 신규 발생지 12곳 가운데 인위적 요인으로 발생한 곳은 7곳(58.3%)으로 자연 확산보다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감염된 소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거나 보관하는 경우다.
발생지역에서 나온 원목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거나 반출금지구역의 소나무를 장작으로 사용하는 행위, 감염 가능성이 있는 조경수를 무단으로 이동시키는 행위 역시 재선충병을 새로운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격자 관리·친환경 방제기술 개발…‘사전 차단’이 핵심
소나무재선충병은 한번 확산되면 막기가 쉽지 않다. 감염목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이미 주변으로 퍼진 재선충의 확산을 차단하기 어렵고, 육안으로는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비병징 감염목’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산림청은 발생 이후 제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예방과 예찰을 강화하는 국가 주도의 방제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올해 수립한 ‘2026~2030년 소나무재선충병 국가방제전략’ 역시 기후변화에 따른 재선충병의 3차 대발생을 조기에 안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국 산림을 하나의 ‘방어선’으로
산림청이 이번 국가방제전략에서 가장 큰 변화로 제시한 것은 ‘국가방제벨트’ 구축이다.
국가방제벨트는 집단·반복 피해지역으로부터 재선충병의 자연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약 400km 규모의 2중 방어선이다. 기존처럼 발생지역을 개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방어선을 구축해 청정지역과 경미지역의 소나무숲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다.
산림청은 올해 말까지 국가방제벨트와 보존 대상 소나무숲의 공간정보를 구축하고, 2027년부터 국가방제벨트를 지정해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재선충병이 없는 청정지역을 50개 이상 시·군으로 확대하고, 5만ha 규모의 ‘재선충병 안심숲’을 조성하는 것도 국가방제전략의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AI·드론·LiDAR 활용…방제도 디지털 전환
예찰 방식도 획기적으로 달라진다. 산림청은 전국 산림을 100m×100m 격자 단위로 세분화해 관리하는 ‘면적 단위 예찰·방제체계’를 도입한다. 지금까지는 발생목 중심으로 관리했다면 앞으로는 일정 면적을 하나의 관리 단위로 설정해 위험도를 분석하고 방제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2026년까지 시범 적용을 마친 뒤 2027~2028년에는 전용 시스템을 구축하고, 2029년부터는 전국에 셀(Cell) 단위 관리체계를 적용할 계획이다.
예찰 과정에는 위성과 헬기, 드론은 물론 LiDAR와 인공지능(AI) 기술도 활용된다. 수집된 자료를 중앙에서 통합 분석해 재선충병 발생을 조기에 탐지하고, 방제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등 국가 주도의 예찰·방제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친환경 방제와 내병성 품종 개발 병행
장기적으로는 약제 중심의 방제를 넘어 친환경 기술 개발도 추진된다. 산림청은 매개충을 표적으로 하는 친환경 방제기술을 개발하고 개체수를 줄이는 연구를 2030년까지 추진하는 한편, 재선충병에 강한 내병성 소나무 우수 개체를 증식·보급하는 사업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기후변화 시대에 지속 가능한 산림관리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의 일환이다.
재선충병은 이제 특정 지역의 산림병해가 아니라 기후변화가 불러온 국가적 산림재난으로 인식되고 있다. 피해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방식만으로는 확산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점에서 예방 중심의 국가방제전략이 얼마나 현장에서 효과를 거둘지가 향후 재선충병 대응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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