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협의 존재 이유가 뭐냐고 농민들에게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경제사업 활성화를 통한 농민 이익 증진’을 존재 이유로 답한다. 그러나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가 진정 농민 이익 증진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가려면, 결국 농협조직 전반의 구조 개선 과제를 같이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민관 합동 농협개혁추진단이 경제사업 활성화 등의 내용을 담은 2차 개혁안을 준비 중인 가운데,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윤일권, 전농)은 농민에게 이익되는 농협개혁안을 도출하기 위해 현장 의견을 모으고 있다. 지난 21일 충북 청주시 오송 선하마루에서 열린 전농 농협개혁 토론회도 그 일환으로 진행됐다.
토론회에선 농협개혁추진단 내 3개 분과(각각 경제사업 활성화, 조합·조합원 제도, 농협 지배구조 담당)가 2차 개혁안에 담고자 논의 중인 내용을 공유함과 함께, 올바른 대안 도출을 위한 농민들의 토의가 진행됐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큰 틀에서 정리했다.
산지조직화 통한 대시장 거래 교섭력 강화 절실
농협개혁추진단 경제사업 활성화 분과에선 크게 △산지 조직화 △판매활성화 △조합원 실익 증진 △도시농협 경제사업 기여 등 4대 주제 아래 대안을 모색 중이다. 경제사업 활성화 분과장인 장경호 농업제도정책연구원 원장은 현재 분과에서 어떤 내용을 논의 중인지 설명했다.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려면 농협이 생산자 조직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조직화를 통해 각 농산물 품목별 규모화·전문화를 이뤄야 하며, 전국 단위 품목별 조직이 도매시장·마트 등 유통영역 대상으로 거래 교섭력을 키우는 과정이 전제돼야 한다. 경제사업 활성화 분과의 논의도 이 대전제 아래 이뤄진다는 게 장 원장의 설명이다.
전국 단위 품목별 조직 설립의 1차 대상 품목은 마늘·양파다. 만성적 가격폭락 문제에 시달리는 양대 핵심 품목이다. 기존부터 마늘·양파 생산자조직이 수급조절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궁극적으론 전국 단위 품목 농협 구성을 통한 수급조절·거래 교섭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농협개혁추진단에서도 양파·마늘 등 노지 채소 관련 산지조직화 방안을 계속 논의 중이다. 농협 역시 전국 단위 품목별 판매연합 조직을 만드는 데는 생각이 비슷한 만큼, 마늘·양파 품목 산지조직화 결과는 멀지 않은 시점에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모든 품목마다 일률적으로 전국 단위 품목조직을 설립하려는 건 아니다. 작물별 특성과 생산지 분포에 따라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월동배추의 90% 가량이 전남광주 해남군에서 생산되며, 유통 상인들이 월동배추 물량의 절대다수를 움켜쥔 상태에서, 전국 단위 배추 품목농협을 만들어 봐야 농협조직이 시장을 대상으로 힘을 발휘하긴 어렵다. 따라서 특정 품목 생산량의 대부분을 일부 지역에서 책임지는 경우, 품목별 지역단위 연합사업 및 전국 단위 협의체를 강화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전개 중이다.
이와 연계해, 김창수 영남채소농협 조합장은 대안으로 △전국 단위 단일 품목농협 육성 지원 △농산물 기준가격(공정가격) 제도화 △공적자금(계약재배 수매자금) 투입 물량은 단일 품목농협에 판매권 위임 △정부 수급정책 연계 등을 제시했다.
김 조합장은 품목농협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공정가격 제도화’를 강조했다. 최근 통과된 「농수산물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반영해 정부가 ‘공정가격 결정위원회’를 설립한 뒤 “노동자가 최저임금 결정하듯 품목별 공정가격을 결정해야 한다”는 게 김 조합장의 주장이다. 합당한 공정가격을 결정한 뒤 품목농협에서 그에 기반한 가격 결정을 한다면, 농민들은 농협과의 계약재배를 안 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 조합장은 “정부에서 농산물 가격이 오를 시 유일하게 내놓는 가격조절 정책은 ‘농산물 수입’이다. 유통업자들은 자기네 이익 극대화를 위해 재고 물량 통계를 내놓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수입농산물은 계속 들어오고, 농민들의 수매가는 낮아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며 “단일 품목농협에서 조직화된 물량을 통한 가격조절과 시장개입이 있어야 농민도, 지역농협도, 소비자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시농협의 경제사업 기여 방안은
농협개혁추진단에선 또한 도시농협의 경제사업 기여 방안도 중점적으로 논의 중이다. 도시농협이 벌어들인 수익을 농민 이익 증진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그 방편으로 농촌농협과의 상생·협력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현행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상 도시농협은 도농상생기금 및 도농상생사업비 등을 조성하도록 규정돼 있다. 다만 도농상생기금·도농상생사업비를 농산물 판매 확대 등 농민 이익 증진 과제와 어떻게 연결할지는 과제로 남아 있다. 도농상생기금은 농협중앙회 상생협력위원회에서 사용처를 정하는데, 농협중앙회 정관 및 농협법 등을 통해 용도를 명확히 정할 필요성이 거론된다.
도농상생기금은 우선 농촌농협의 경제사업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보전하는 데 쓰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물론 경제사업 손실보전이라 해도 정말 사업을 잘 해보려다가 손실이 난 것인지, 엉터리로 경제사업을 하다가 손실이 난 것인지 가려내는 건 필요하다. 다만 정말로 농민들을 위해 농산물 가격을 높이려는 등의 노력을 하다가 손실이 난 지역농협은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한편 도시농협의 경제사업 의무이행기준 마련 논의도 전개되는 중이다. 도시농협이 신용사업 수익 증진에만 신경쓸 게 아니라,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조금이라도 더 잘 팔기 위해 노력하게끔 최소한의 의무이행기준을 설정하자는 뜻이다. 당연히 의무이행기준의 핵심 사항은 ‘농산물 판매실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농산물을 잘 판매하는 도시농협엔 상술한 도농상생사업비를 감면시켜주는 등의 우대조치를 취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온라인 유통 강화, 공공급식 영역 역할 확대 방안도 논의
판매활성화와 관련해선 △농협조직 내 계통구매 물량 확대 △신규 온라인 유통전략 강화 △판매사업 전문인력 육성 △공공급식 영역에서의 농협 역할 확대 등의 의제를 놓고 논의 중이다. 특히 최근 온라인 유통영역의 중요성이 강조됨에도 농협은 온라인 유통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무수히 받는다. 이에 농협개혁추진단에선 온라인 중심의 신성장 전략 구성 및 신규 도매 플랫폼 구축, 판매망 강화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
공공급식 영역에서의 농협 역할 확대에 있어선, 우선 농협이 농민단체·시민사회단체(친환경 공공급식 운동 주체 등)들과 공공급식 확대를 위한 연계·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한, 과거 문재인정부 당시 완전히 민간영역으로 넘어갈 뻔했던 군급식 분야에서의 지역산 농산물 공급 확대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초미의 관심사, 조공법인 체제개혁
농협개혁추진단 조합·조합원 제도 분과에선 지역농협 및 조합원 관련 각종 제도 개선방안을 논의 중인데, 특히 농축협·조합원 제도 자체를 ‘경제사업 친화적’으로 바꾸려는 논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도를 경제사업 친화적으로 바꾸려면, 경제사업에 열심인 지역농협이 더 우대받고 고평가받는 구조부터 만드는 게 기본이다. 이를 위해 농협중앙회의 지역농협 평가 시 규모화 여부보다 ‘경제사업 실적’을 우선시하는 기준, 소규모 지역농협이지만 판매사업이 활성화된 곳(소위 강소농협)은 합병시키지 않는 기준 등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재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 부실 발생 시 각종 지원책까지 동원하며 지역농협 간 합병을 부추기는 중이다. 무분별한 합병보다 ‘공동사업 체계 구축’을 우선시할 필요성도 거론되고 있다. 개별적으론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든 소규모 지역농협 간 공동판매·공동구매·공동 APC(산지유통센터) 운영으로 소규모 지역농협이 존속하며 공동의 경쟁력을 확보할 데 대한 주장이다.
또한 앞서 거론한 품목농협 활성화와 관련해, 신규 품목농협이 농협중앙회 회원조합으로 가입하는 게 극히 어려운 상황이다. 농협법 제115조 제2항에 규정된 농협중앙회 회원조합 가입요건을 보면, “부실(우려) 조합에 해당하는 곳은 (농협중앙회) 가입 거절이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다. 충분한 자금 확보가 어려운 상태로 만들어진 신생 품목농협에 ‘부실(우려)조합 기준’을 들이미는 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쏟아진 바 있다. 이에 농협개혁추진단에선 품목농협에 한해 농협법상 ‘부실(우려) 조합’ 기준을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역농협들이 공동 경제사업을 펼치는 공간인 조합공동사업법인(조공법인)의 운영 투명화 방안은 현장 농민들의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해 경기도 여주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에서 조공법인 운영위원회의 기존 결정을 뒤집고 벼 수매가를 낮게 책정했던 전례를 기억하는 농민들은, 조공법인 의사결정 과정의 농민 참여 및 투명한 정보공개가 선행되지 않으면 조공법인을 통한 경제사업 활성화는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이에 농협개혁추진단은 △조공법인 내에 감독 권한을 가진 ‘운영협의회’ 의무설치 △운영협의회에 조공법인 출자 참여 지역농협의 조합원을 출자 비율에 따라 선출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경영상태에 대한 출자조합 대상 보고 의무화 등을 통한 조합원 알 권리 보장 내용도 담으려 한다.
다만 운영협의회 의무설치만으론 책임경영체계 확립이 어렵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영재 전국쌀생산자협회 회장은 운영협의회 수준을 넘어 ‘대의원제’에 기반한 조합원 참여형 조공법인 운영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의원회와 달리 의사결정기구가 아닌 운영협의회만으론 책임경영 강화는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농민들도 “실제 대의원들이 (조공법인) 대표를 선출·해임하고 사업부터 농산물 가격까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배구조 개선 위한 숙제, ‘양대 지주의 회원조합연합회 개편’
농협조직의 근본적 구조개편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구성된 농협개혁추진단 농협 지배구조 분과의 경우, 2012년 사업구조 개편 이후 농협 지주체제에 대한 재평가가 핵심 안건으로 상정된 상태다.
농민과 연대하는 현장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경제지주·금융지주의 연합회 전환’을 촉구해 왔다. 양대 지주를 현재처럼 농협중앙회가 출자하는 자회사로 둘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적 원칙에 따라 농협중앙회로부터 독립한 ‘회원조합연합회’로 바꾸자는 의미다. 이대로라면 농협경제지주는 경제사업연합회로, 농협금융지주는 신용사업연합회로 전환되는 셈이다. 농협중앙회의 경우 회원 교육·지도 및 농정활동 등 비사업적 기능에 집중하는 조직으로 재탄생시키는 계획도 포함된다.
기사, 번역, 출처 또는 데이터에 문제가 있나요?
수정 요청 제출이 기사의 주제와 관련된 작물·수입·가격 정보는 추후 제공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