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식동원(藥食同源). ‘음식과 약은 근원이 같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은 매일 먹는 음식이 몸을 지키는 가장 좋은 약이라고 여겼다. 최근엔 한단계 더 나아가 특정 성분을 높인 ‘기능성 품종’이 잇따라 선을 보인다. 쌀부터 고추·토마토까지 평범한 식재료의 특별한 변신을 살펴본다.
밥심에 건강을 더하다, 기능성 쌀
매일 먹는 주식이기에 효능을 더한 품종도 여럿 나왔다. ‘머리 좋아지는 쌀’ ‘키 크는 쌀’로 알려진 ‘하이아미’는 우리 몸의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이 일반 쌀보다 31% 많다. 농촌진흥청이 선정한 밥맛 좋은 최고품질 벼이기도 하다. 2008년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이 개발했다.
‘건양2호’는 단백질의 일종인 글루테닌이 일반 쌀에 비해 10% 적다. 신부전증·통풍 환자처럼 단백질 섭취를 줄여야 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동시에 아밀로스 함량도 낮아 밥이 부드럽다. 2013년 농진청 신소재개발과에서 개발했으며 현재 충남 서산간척지에서만 재배한다.
‘도담쌀’은 혈당 관리에 도움을 주는 곡물이다. 저항전분 함량이 일반쌀보다 10배 높다. 빠르게 소화돼 포도당으로 흡수되는 일반 전분과 달리 저항전분은 소화 효소가 분해할 수 없어 혈당이 오르는 속도가 현저히 낮다. 또 저항전분은 대장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 후 식이섬유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2013년 농진청 식량원이 개발했다. 하태정 농진청 품질관리평가과장은 “최근 연구에선 ‘도담쌀’ 섭취 시 장내 유익균을 증진하고 유해균을 억제하는 게 밝혀졌다”고 전했다.
비만 치료제 대신 기능성 고추?
‘당조고추’는 세계 최초로 당뇨 예방 효과를 인정받은 고추다. 알파글루코시다아제는 소장에서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바꿔주는 효소다. 알파글루코시다아제 억제제(AGI)는 이 효소의 작용을 견제해 탄수화물 분해 속도를 늦추고 식후 급격한 혈당 상승을 막아준다. 당조고추 AGI 함량은 일반 고추의 3∼4배에 이른다. 노란빛이 도는 맑은 연두색을 띠며 맵지 않고 달큼하다.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이 체지방을 연소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하지만 살을 빼겠다며 매운 고추를 계속 먹기란 고역이다. 이 고민을 타파해줄 구원자가 바로 ‘항비초’다. 캡사이신과 구조가 비슷하나 매운맛은 거의 없고 체지방을 분해하는 데 탁월한 캡시에이트를 크게 늘렸다. 청양고추의 3배에 이르는 함유량이다. 진한 초록색을 띠고 과피가 두꺼워 식감이 좋다.
‘항비초’ 개발업체인 에이에프피에스앤피(AFPSNP)의 변상지 대표는 “식욕을 억제하는 비만 주사제와 달리 ‘항비초’는 지방 세포를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비교 우위가 있다”며 “하루에 3∼6개 정도 먹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가지고추로도 불리는 ‘미인보라’는 안토시아닌의 보고다. 안토시아닌은 가지·포도에 풍부한 보라색 색소로 ‘미인보라’엔 가지보다 4배 많이 들어 있다. 활성산소를 제거해 염증을 줄이고 혈관 기능, 야간 시력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매운맛이 거의 없고 육질이 아삭해 생으로 먹기 적합하다. 매운맛을 선호한다면 같은 계열의 ‘드셔보라’가 괜찮은 선택지다.
고추 육종 전문가인 강병철 서울대학교 농림생물자원학부 교수는 “소비자가 기능성 고추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고 육종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서 다양한 품종이 더 빨리 개발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나는야 약이 될 거야, 기능성 토마토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 얼굴이 파랗게 된다”는 유럽 속담이 전해 내려온다. 토마토를 많이 먹으면 건강해져 병원에 갈 필요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이런 이점을 강화한 품종도 다수 등장했다.
‘하이리코’는 리코펜을 늘린 것으로 크기는 자두만 하다. 리코펜은 토마토의 붉은색을 만드는 성분으로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다. 일반 토마토는 100g당 3.5㎎인데 ‘하이리코’는 25.9㎎에 달한다. 지용성으로 파스타나 토마토달걀볶음처럼 기름에 살짝 볶아 먹으면 체내 흡수율을 높일 수 있다.
‘토마토는 빨갛다’라는 상식은 녹갈색의 방울토마토 ‘골드톡’ 앞에선 통하지 않는다. 이 독특한 색깔은 엽록소인 클로로필에서 비롯하는데 노폐물을 배출하고 면역력도 끌어올린다. 100g당 클로로필 13.3㎎을 함유해 일반 토마토의 4.7배다. 체내 활성산소 농도를 낮추고 세포 손상과 노화를 방지하는 퀘르세틴도 100g당 3.1㎎으로 6.7배 더 풍부하다.
‘루비벨’은 자외선을 흡수하는 천연색소 피토엔과 피토플루엔 함량을 높인 방울토마토다. 일반 토마토의 100배가 넘는다. 멜라닌 생성을 방해해 피부를 맑게 유지하도록 돕는다. 파프리카처럼 울퉁불퉁한 모양이 특징으로 샐러드에 넣으면 눈과 입이 모두 즐겁다. 전남광주 담양군농업기술센터는 ‘루비벨’을 지역 특화 품목으로 보급한다.
장영식 담양군농기센터 원예작물팀장은 “지역농가 소득을 올려보고자 모양과 기능이 독특한 신품종에 주목했다”며 “생산량을 웃도는 주문이 이어질 만큼 인기를 끈다”고 말했다.
황지원 기자 support@nongmin.com